[사설]국회 政改委의 속 보이는 짓

  • 입력 2002년 2월 8일 18시 30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 선거관계법 소위원회가 현행 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에 대한 처벌 규정을 크게 완화하기로 합의한 것은 어떤 명분을 내세우고 이유를 단다고 해도 그 속이 뻔히 보이는 염치없는 짓이다.

현행 선거법은 상대 후보가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허위사실을 공표했을 경우 7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원 이상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게 하고 있다. 정개위 소위는 여기서 ‘500만원 이상’이라는 하한 규정을 없애자고 입을 맞춘 것이다. 합의의 명분은 벌금의 하한액이 법관의 재량권을 제한한다는 것이고, 이유는 ‘별것도 아닌 사항’까지 허위사실공표로 악용되는 부작용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나라당 측은 여권이 이 조항을 빌미로 야당을 탄압할 소지도 적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속셈은 분명하다. 현행 선거법상 100만원 이상의 벌금형이 선고되면 의원직을 잃게 돼 있다. 따라서 벌금 하한액이 500만원인 허위사실공표죄로 기소되면 십중팔구 의원직을 잃기 마련이다. 그러니 벌금 하한액을 없애 그런 위험성을 낮추거나 피해 보자는 데 여야(與野)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것이다.

더구나 현행 관계법을 고친 다음 이를 지난 총선에까지 소급 적용한다면 현재 이 혐의로 2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한나라당 유성근(兪成根) 의원을 비롯해 여야의 일부 선거법 위반 의원들이 혜택을 볼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 측은 소급 적용을 하더라도 경과규정을 두어 현재 법원에 계류중인 사안과는 별개로 처리할 것이라고 하나 소급 적용의 발상 자체가 용납될 수 없다.

물론 현실에 비추어 지나치게 엄격한 법은 고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러기에는 여전히 우리 정치의 수준이 낮다. 특히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저질의 정치 행태가 뿌리뽑히기 전까지는 현행법의 정신은 존중돼야 한다. 정개위 소위의 합의사항은 현 단계에서 백지화돼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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