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목숨값

  • 입력 2002년 2월 7일 17시 58분


1961년 4월 미군 특공대가 쿠바 피그만에 상륙했다. 피델 카스트로 정권을 뒤엎으려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쿠바 침공 사건’이다. 그러나 특공대 안에 숨어있던 쿠바 첩자 때문에 이 작전은 수포로 돌아가고 1113명 모두 포로가 된다. 이들을 구출하기 위해 미국은 6200만달러를 냈다. 한 사람당 몸값이 5만6000달러인 셈인데 그 계산법이 재미있다. 금 1온스가 32달러일 때였으니까 잡힌 특공대원의 평균체중 150파운드를 금값으로 환산하면 7만6000달러. 여기서 평균연령 25세인 포로들이 미국인 평균 근로 햇수만큼 더 일한다고 치고 그 추가수입의 이자소득을 뺀 게 5만6000달러라는 얘기다. 금값으로 목숨값을 대신한 것은 아마도 이때가 처음이지 싶다.

▷미국의 한 해부학자가 어지간히 할 일이 없었던지 시신의 값을 매겨본 모양이다. 화장하고 남은 유골 속 화학물질을 돈으로 환산하니까 나온 금액이 달랑 7.28달러, 우리 돈으로 따지면 1만원이 채 안 된다. 그런가 하면 살아있는 사람의 값은 600만달러가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호르몬과 DNA 때문이란다. 산 자의 값이 죽은 자의 80만배가 넘으니 이를 두고 ‘생명의 신비’라고 해야 할까.

▷하지만 같은 목숨이라고 해도 값은 천차만별이다. 심지어 같은 전장에서 죽은 병사들끼리도 그렇다. 6년 전 내전 중인 보스니아에 평화유지군이 주둔했을 때 전사자에 대한 유엔의 보상금 지급을 놓고 설전이 오갔다. 선진국 출신 전사자는 1인당 8만5000달러, 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 전사자는 1만9000달러로 무려 4배 이상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당시 부트로스 갈리 유엔 사무총장은 “같은 업무를 수행했으니 똑같이 5만달러씩 주자”고 했다가 선진국 대사들로부터 빗발치는 항의를 받았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생활수준이 다르다는 게 이유였다. 선진국에서 태어나지 못한 것도 후회해야 할 판이다.

▷미국이 2주 전 아프가니스탄 공습 때 숨진 민간인 희생자 가족에게 1000달러씩 배상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수도 카불 시민의 한달 평균 임금이 4달러라고 하니 그들에겐 큰돈일 게다. 그래도 9·11테러에서 숨진 미국인 희생자 가족이 받은 165만달러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우리나라 사람의 목숨값은 얼마나 될까. ‘1500만∼3000만원만 내면 확실히 죽여준다’는 살인청부 사이트가 요즘 인터넷에 횡행한다고 하니 이를 우리 목숨값으로 봐야 할까. 기막힌 세상이다.

최화경 논설위원 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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