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차수/문화부의 비문화장관들

  • 입력 2002년 2월 1일 18시 13분


남궁진(南宮鎭) 문화관광부장관은 지난달 31일 역대 문화부 장관들을 초청해 저녁을 함께 했다. ‘문화 월드컵’이 성공할 수 있도록 협조를 당부하기 위해 마련한 행사였다.

문화부는 전 현직 장관 8명이 나란히 찍은 사진을 언론사에 보내 보도를 요청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 전직 장관들이 어떤 협조약속을 했는지에 관한 내용은 없었다.

남궁 장관을 중심으로 기념촬영한 역대 장관들의 면면을 보면서 문득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초대 이어령(李御寧) 장관을 제외하고는 문화인이라고 할 만한 인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주돈식(朱燉植) 김영수(金榮秀) 박지원(朴智元) 김한길 전 장관은 대통령수석비서관에서 ‘낙하산’으로 내려와 전문성이 없었고 이민섭(李敏燮) 신낙균(申樂均) 전 장관은 국회의원 신분으로 장관을 겸임하느라 업무에 전념하지 못했다. 국무총리 비서실장 출신인 송태호(宋泰鎬) 전 장관 역시 문화와는 거리가 있다.

특히 ‘문화 대통령’을 자임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기용한 문화부 장관 4명은 모두 정치인 출신이다.

역대 문화부 장관들은 한결같이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이들이었지만 “문화부 장관이 돼서 처음으로 오페라를 봤다”고 털어놓은 이도 있고, 평일에도 지역구에 다녀오느라 회의 중에 종종 낮잠에 취했던 인사도 있다.

문화계 출신이 아니다 보니 장관에서 물러나면 사실상 문화계와의 관계도 단절된다. 주돈식 김영수 전 장관이 미술애호가와 예술의 전당 후원회장으로 ‘전임 장관’의 체면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다.

현 정부 들어 장관을 지낸 사람 중 신 전 장관은 민주당 상임고문으로 당(黨)의 일에 매달리고 있고 대통령정책특보에 기용된 박 전 장관은 여야 정쟁의 빌미가 되고 있다. 김 전 장관 역시 최근 3당합당 등 정계개편을 위해 뛰고 있다.

프랑스가 앙드레 말로 같은 뛰어난 문화부장관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드골 같은 위대한 대통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차수 문화부기자 kim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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