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주한미군은 한국법원 존중하라

  • 입력 2002년 1월 27일 18시 28분


한강 독극물 방류사건으로 기소된 미8군 군속 앨버트 맥팔랜드에 대한 한국 법원의 재판이 미군 당국의 비협조로 지연되는 사태는 매우 유감스럽다.

서울지법은 주한미군 영내에서 독극물을 방류해 한강으로 흘러 들어가게 한 맥팔랜드씨가 법정에 출석하지 않자 구인장을 발부했으나 미군 당국이 이를 거부했다. 주한미군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22조 3항 ‘공무집행 중 범죄 행위는 주한미군이 1차적 재판권을 갖는다’는 규정을 근거로 재판관할권을 주장하며 한국 법원의 공소장과 구인장 수령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SOFA 합의의사록은 ‘공무’에 대한 해석상의 혼란을 막기 위해 ‘공무집행 기간 중의 모든 행위가 아니라 공무의 기능으로 행하여질 것이 요구되는 행위에만 적용된다’고 못박았다. 따라서 독극물 방류 같은 범죄 행위는 SOFA가 규정한 ‘공무’가 아니라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

주한미군이 이 사건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모순된 태도를 보더라도 재판관할권이 어디에 있는지는 명백하다. 한국 검찰이 맥팔랜드씨를 벌금 500만원에 약식 기소했을 때는 벌금 500만원을 예납하며 사법 절차에 순응하다가 한국 법원이 사안의 무게를 따져 정식 재판에 회부하자 재판관할권을 인정할 수 없다는 식으로 태도를 바꾸었다.

맥팔랜드씨를 재판할 한국의 사법부에는 미국 수준의 적법 절차가 확립돼 있다. 피고인의 권리가 흔히 무시되는 제3세계 적대 국가의 법정에 넘겨지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주한 미군은 주권 국가의 사법 절차를 무시함으로써 불필요하게 한국민의 반발을 사고 나아가 양국 관계를 악화시키는 어리석음을 저질러서는 안 된다.

대한민국 사법부가 외국 주둔군의 자의적인 법 해석에 밀려 그 권한을 행사하지 못한다면 주권 국가라고도 말하기 어렵다. 정부는 모든 가능한 외교적 수단을 동원해 SOFA의 규정에 따라 한국의 사법절차가 존중되는 선례를 세워 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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