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모순과 위선으로 가득찬 삶'꿈꾸는 마리오네뜨'

  • 입력 2002년 1월 25일 17시 59분


◇꿈꾸는 마리오네뜨/권지예 지음/308쪽 8000원 창작과비평사

또하나의 이름이 문단의 새 얼굴로 지금 눈길을 모으고 있다. 권지예란 이름이 그 주인공이다. 예년에 비추어 파격이라 여겨질 만큼 뜻밖에 금년도 이상문학상 수상작가로 선정되었고, 첫 소설집까지 나왔다. 97년에 등단하여 꾸준히 작품 발표를 해왔으니 의당 첫 작품집을 묶어낼 만한 시기가 되어 간행된 것이겠지만, 아무래도 첫 작품집의 출간과 맞물린 이 팡파르는 일종의 신데렐라로 그를 바라보게 만드는 면이 없지 않다. 그러나 속내를 아는 이들은 그가 대학 다닐 때부터 이런저런 문학상을 받는 등 문재를 날렸고, 이후 결혼과 함께 비록 오랫동안 글쓰기를 중단하였지만 등단 이후 자기만의 독특한 질감으로 독자적인 소설세계를 조용히, 그러나 정열적으로 개진해왔음을 알고 있다.

실제로 그가 등단 이후 발표한 작품 면면을 보면 이 점은 쉽사리 확인된다. 무엇보다 근년의 세상변화에 잘 밀착하여 매우 원색적인 색감으로 세태와 인간심리를 묘파해내는 언어적 조형력이 돋보인다. 특히 급작스런 변화 속에서 아직 또렷한 문화적 정체성을 체화하지 못한 채 갈등하는 사람들의 심리적 욕망을 가시돋친 필치로 드러내는 여성적 관점은 예리한 감각적 통증을 느낄 정도로 그 자체가 강한 사회성을 환기시킨다. 거기에 작가가 살았던 8년간의 프랑스 파리에서의 생활이 작품안으로 고스란히 이월하여 그 자체가 소설 무대의 확대임과 동시에 세계화의 현재성을 담보해주는 실제 토대가 되면서 우리 자신들을 되비추게 해주는 거울 역할을 한다. 사실 그의 작품세계는 젊은 부부 사이에 얼키고 설킨 애정문제가 대다수이기에 그닥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림에서 좋은 인물화가 좋은 배경 속에 나온다고 하듯 그의 작품 또한 이런 일상적인 애정문제를 감싸고 있는 사회심리적 지층들을 폭넓게 활용함으로써 오늘 우리 자신들이 모순적으로 겪고 있는 내면적 그늘을 남다르게 포착해내는 깊이를 내보이고 있다.

‘서울’ 아내와 ‘파리’ 남편이 서로에 대한 정신적 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자 섹스 파트너를 따로 가짐으로써 성적인 일탈로 각자의 삶을 위무하는 등단작 ‘꿈꾸는 마리오네뜨’, 파리의 다국적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동네를 무대로 하여 그 비슷한 애정행각을 보이는 ‘정육점 여자’, 그리고 남편의 후배와 불륜의 사랑을 하게 되는 ‘섬’ 등에서 보듯 이른바 인간관계의 가장 근본이 되는 결혼과 부부관계마저 단절의‘섬’으로 파열되는 양상이다. 이상적인 사랑과 본능적인 성욕 사이에서 어떤 문화적 정체성으로 확립되지 않은 우리 사회의 윤리적 모순이 위선과 가면의 사람 관계로 투사된다. 그렇다고 고발 혹은 페미니즘적 시각으로만 마냥 내달리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탈주와 열망, 분노 한켠 뒤에는 그만한 무게의 허무와 절망, 상실감이 숨쉬며,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에 대한 연민 속에서 체념에 가까운 삶의 다독임이 자리잡고 있다. 그 점에서 대극적인 정서의 요동이야말로 오늘 우리 자신의 혼란스런 모습이기에 그 자체에 정직하게 대면해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숨은 목소리가 아닐까.

그런데 이런 사회적 전언을 미학적으로 돋보이게 하는 권지예의 문학적 힘은 이른바 대중성과 예술성을 함께 구비한 서사적 조형 능력에서 나온다. 선명한 화면을 연상케 하는 강렬한 묘사적 필치, 불쑥불쑥 기습처럼 내습하는 작중인물들의 도발적인 언어, 비교적 단문 위주로 엮어낸 속도감 있는 문체의 서사적 힘,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입체적으로 꽉 짜이게 하는 구성력 등등이 그런 예가 될 것이다. 그 점에서 권지예는 작가로서는 멋진 신고식을 우리 앞에 내보인 셈이다.

임규찬(문학평론가·성공회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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