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명재/“사업? 60%가 술접대죠”

  • 입력 2002년 1월 16일 18시 10분


한국 사회에서 문제가 터지면 순서는 정해져 있다.

먼저 돌멩이를 준비하고 희생양을 찾는다. 그리곤 돌멩이로 희생양에게 실컷 분풀이를 한 다음 깨끗이 잊어버린다. 하지만 문제의 근원을 찾고 해답을 구하는 작업은 별로 하지 않는다.

‘패스21 윤태식 게이트’로 관련자들이 구속되는 사태를 지켜보면서 이 사건의 본질적 문제가 몇몇 사람에게 돌을 던진다고 해결될까라는 의문이 든다.

윤태식 게이트는 극히 부패한 경우이긴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기업하는 방식의 한 단면이다. 정도의 문제이지 적잖은 기업인들이 ‘윤태식 사업 방식’을 쓰고 있고, 그게 어떤 부분에서는 먹히고 있다.

거의 매일 접대 술자리를 가진다는 한 중소기업인의 말은 이렇다.

“연구실이나 공식적인 상담에서 이뤄지는 건 사업의 40% 정도밖에 안 된다. 나머지 60%는 강남의 술집에 가서 질펀하게 대접해야 성사된다.”

한달 매출이 10억원가량 되는 다른 회사는 접대비로 매달 3000만원을 쓴다. 하지만 이 회사 사장은 “그 돈이 아까운 줄 모른다”고 한다.

“술 몇 번 사서 큰 건 하나만 잡으면 여유 있게 사업할 수 있으니 ‘투자 효율’이 낮은 건 아니다”는 얘기다.

이쯤 되면 ‘기업가’가 아닌 ‘로비스트’라야 사업에 성공할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물론 핵심 역량을 가진 많은 건전한 기업들이 묵묵히 활동 중인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정부가 지원하는 각종 정책자금이 결정되는 과정은 과연 투명한가. 실력보다는 그럴듯한 ‘포장’과 당국자와의 비공식적인 관계가 점수를 더 받지는 않는가.

그래서 정책자금을 ‘눈먼 돈’이라고 하고 이 돈 못 먹으면 바보라는 말도 나온다. 이런 풍토에서 누가 기술개발에 땀을 흘리겠는가.

공대 출신 어느 기업인은 술이 약해 접대 술자리를 매우 힘들어하다가 직원으로부터 “사장님은 왜 술도 못하면서 사업을 하려고 나섰느냐”는 핀잔을 들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기업하는 사람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접대 술자리를 피하지 않는 술 실력, 그리고 부조리를 견뎌낼 수 있는 강한 비위인지 모르겠다.

‘게이트’의 근원을 찾고 해답을 구하는 작업은 누구 몫인가.

이명재 경제부 mjl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