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영란/핵심빠진 개정형법 손봐야

  • 입력 2002년 1월 16일 18시 10분


국회는 지난해 11월 9일 갑작스레 의원입법 형식으로 형법개정안을 발의, 12월 6일 국회 본회의에서 이를 의결하였다. 이 개정된 법률은 공포 후 6개월이 경과한 2002년 6월부터 시행된다.

개정 내용을 살펴보면 형법 제347조의 2, 즉 ‘컴퓨터 등 사용 사기죄’를 일부 개정한 것이다. ‘컴퓨터 등 사용 사기죄’는 1995년 형법을 부분 개정할 때 컴퓨터 자료의 부정 조작, 컴퓨터 파괴, 컴퓨터 비밀 침해행위 등에 대한 처벌 규정과 함께 신설된 것이다. 당시 법무부는 이 조문을 독일 형법으로부터 도입하는 과정에서 ‘컴퓨터 등 정보처리장치에 허위의 정보 또는 부정한 명령을 입력하는 행위’만을 규정하고 ‘데이터의 권한 없는 사용이나 그 밖에 권한 없는 변경을 가하는 행위’를 구성 요건에서 누락시켰다.

▼‘재물’ 조항없이 처벌 곤란▼

또 형법 제347조의 2 ‘컴퓨터 등 사용 사기죄’를 신설하면서 그 전제가 되는 제347조 사기죄가 그 객체로서 ‘재물’과 ‘재산상의 이익’을 함께 규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컴퓨터 등 사용 사기죄의 객체를 단순히 ‘재산상의 이익’으로만 규정하였다.

그 결과 어렵게 도입한 컴퓨터 등 사용 사기죄로서는 타인의 신용카드를 이용하여 비밀번호를 입력한 후 현금을 무단 인출하거나 다른 계좌로 이체하는 범법행위를 처벌하지 못하거나 부득이 기존의 절도죄로 처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초래되었다.

이런 문제점을 입법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국회의원 27명이 의원입법으로 형법 개정을 발의하여 과거 누락시켰던 부분을 구성요건으로 추가하는 형법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였고, 이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문위원실의 검토 과정에서 일부 자구수정을 거친 후 본회의에서 가결된 것이다.

그러나 이번 개정 역시 당초 개정의 목적이나 취지와는 달리, 형법 제347조의 2에 내재되어 있는 해석상의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해 여전히 개정목적을 달성할 수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1995년 개정 당시 빠뜨렸던 ‘재물’을 또다시 빠뜨리는 실수를 반복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형사법학계에서는 절취하거나 일시적으로 취득한 타인의 신용카드로 본인의 승낙 없이 현금을 무단 인출하는 행위를 사기죄로 처벌하지 못하는 가장 주된 이유는 컴퓨터 등 사용 사기죄의 객체로서 ‘재산상 이익’만이 규정되어 있을 뿐 ‘재물’이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으로 분석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현금의 인출은 ‘재물’의 취득이지 ‘재산상의 이익’ 취득이 아닌 것이다.

이번 형법 개정이 법무부 등 정부 측 주도에 의하지 않고 순수하게 의원입법 형식으로 이뤄졌다는 사실 자체로 보면 국회가 본래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긍정적 평가에도 불구하고 국민생활에 밀접하고도 중요한 법률인 형법을 개정하면서 전혀 입법예고나 관련 학계에 의견조회를 하는 등의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아니한 점은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전국의 형법학자들 거의 모두가 형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의결된 후에야 비로소 형법 개정 사실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형법과 같은 기본법의 개정은 지극히 신중해야 한다. 반드시 국민적, 사회적 합의를 필요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형법의 개정은 취지나 내용 못지않게 절차의 정당성이 중요한 것이다. 더욱이 일반적으로 볼 때 이 분야의 비전문가인 의원들의 입법활동은 전문가의 의견을 들어야만 실수나 과오를 줄일 수 있다. 이번 개정 과정에서 관련 학계의 의견을 구하고 공론화하였더라면 국회의 권위에 손상을 가하는 미숙한 입법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준비기간중 보충 개정을▼

개정된 형법이 시행되기까지는 6개월의 준비기간이 있다. 혹시 이 기간 중에 국회가 다시 보충적인 개정을 단행하여 원래 개정안의 의도대로 타인의 신용카드를 이용하여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현금을 무단 인출하는 행위나 다른 계좌로 이체하는 행위가 컴퓨터 등 사용 사기죄로 규율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생각해 보면 국회의 졸속입법은 이번만이 아니다. 여야 정쟁에 시간을 다 빼앗기고 정작 국회의 가장 중요한 기능인 입법활동은 시간에 쫓겨 졸속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다시는 이번 형법 개정과 같은 우를 범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이 영 란 숙명여대 교수·한국형사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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