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신용카드 도둑 통계로 잡는다

  • 입력 2002년 1월 15일 13시 53분


미국의 대형 쇼핑몰에서 아기 기저귀와 함께 가장 잘 팔린 제품은 무엇일까.

바로 맥주다. 아내의 부탁으로 기저귀를 사러온 남편들이 지나가는 길에 가볍게 한 잔 걸친 것이다. 실제로 미국의 쇼핑몰 회사인 월마트에서 맥주와 기저귀를 나란히 진열하자 맥주 매출이 크게 늘어났다. 이처럼 다양한 사물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를 밝혀내는 것이 데이터마이닝 (datamining) 기술이다. 이 기술로 고급 테니스채를 산 사람은 머지 않아 골프채를 새로 살 확률이 높다는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국내 수학자들이 최근 이 기술을 이용해 신용카드 도둑을 잡는데 나섰다. 이화여대 김용대 교수(통계학과)는 서울대 복잡계통계연구센터 및 벤처기업인 비엘시스템스와 함께 카드 도둑을 잡거나 우수고객을 찾는 컴퓨터 프로그램인 ‘회오리바람’을 개발했다고 밝혔다.

신용카드 사업은 최근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도난이나 인터넷 해킹의 문제를 안고 있다. 연구팀이 개발한 프로그램은 컴퓨터가 스스로 생각해 이같은 문제를 해결한다.

예를 들어 신용카드 도둑을 잡는다고 생각해 보자. 지금까지는 먼저 도둑을 잡기 위한 굵직한 도난 규칙 을 만들었다. 신용카드로 갑자기 거액을 쓰거나 엉뚱한 장소에서 물건을 사는 행위들이다. 그러나 영악한 도둑에게는 이같은 규칙이 무용지물이다.

새 프로그램은 과거 도난된 신용카드들의 사용 정보를 보고 스스로 도난 규칙을 만들어 의심스러운 사람을 찾는다. 과거 정보가 많을수록 맥주와 기저귀 처럼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도난 규칙들이 쏟아져 나온다. 김 교수는 예를 들어 20대 젊은이가 정력제를 사는 등 엉뚱한 물건을 사면 의심스럽다는 규칙이 나온다 며 회오리바람이라는 이름도 컴퓨터가 정보를 비비 꼬아 분석한다는 뜻에서 붙였다 고 밝혔다.

이 프로그램은 7년전 미국의 벨 연구소가 개발한 부스팅 이라는 데이터마이닝 기법을 국내 통계학자들이 통계학 이론과 접목해 새로 개발한 것이다.

부스팅은 처음에 경마에서 나왔다. 보통 사람 여러 명이 낸 경기 전망을 종합하면 전문가 1명의 의견보다 결과가 더 잘 맞을 때가 많았고, 이 현상을 통계학자들이 이용한 것이다. 컴퓨터가 정보를 보고 세부 규칙을 많이 만들어 종합하는 것인데 결과가 이상하게도 잘 맞아 ‘바보들이 모여서 천재를 이긴다’는 말이 붙었다.

김용대 교수는 “미인대회와 비교하면 기존 통계 프로그램은 천재들이 여자의 얼굴만 뚫어지게 볼 때, 부스팅 프로그램은 여러 명의 바보들이 각각 후보의 얼굴, 몸매, 교양, 말솜씨 등을 함께 보기 때문에 더 정확한 미인을 발견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에 개발한 프로그램은 어설픈 각각의 규칙을 어느 정도 똑똑하게 바꿨기 때문에 정확도와 규칙에 대한 해석력을 높였다. 김 교수는 “은행 거래 정보를 분석한 결과 불량 거래자를 기존 방법보다 20% 더 정확하게 찾아냈다”고 설명했다.

이 프로그램은 새 상품을 살 만한 고객을 찾아내거나, 은행에서 대출 심사를 하는 등 다양하게 쓸 수 있다. 예를 들어 분유를 산 사람은 자동차를 새로 살 확률이 높다는 규칙을 컴퓨터가 만들어 주면 분유 고객에게 자동차를 광고하는 것이다. 분유를 사는 사람은 새 가족이 늘었기 때문에 자동차도 바꿀 가능성이 높다.

김 교수는 “최근 한 인터넷 경매 회사와 속칭 ‘인터넷 카드깡’ 을 잡아내는 문제를 협의하고 있다”며 “곧 국제특허를 출원한 뒤 외국으로 진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상연 동아사이언스기자>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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