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24시/과장님 우리과장님①]그대는 일복 터진 '낀세대'

  • 입력 2002년 1월 3일 17시 38분


《사회의 부(富)를 창출하는 사람들. 추운 겨울에도 따뜻한 집에서 TV를 보며 편히 지낼 수 있게 해주는 생산의 주인공. 바로 직장인들이다. 이들은 지금 거센 돌풍의 한 가운데 서 있다. 기업환경이 급변하기 때문이다. 한때 상당수 직장인들은 이런 변화의 바람에 적응하지 못하고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이젠 대다수가 스스로를 담금질하며 환경에 맞게 변신하고 있다.

우리 시대 직장인들의 보람과 고뇌는 무엇인가. 이들은 어떻게 앞날을 설계하고 자신을 계발하는가. 동료들과 때로는 경쟁하며

한편으론 온기를 나누는 행태는 어떤가. 목표를 이루기 위한 열정은 어떻게 표출되는가. 2002년 한국 직장인의 ‘꿈과 현실’을 시리즈로 싣는다.》

신세계 홍보팀의 이달수 과장(35). 새해를 맞으며 ‘나는 하나의 브랜드로 우뚝 섰는가’하고 자문해본다. 대답은 ‘not yet(아직 아니다)’이다.

생각하면 억울하다. 그의 ‘사수’였던 선배 과장들은 일이 이렇게 많지 않았다. 이 과장은 자신의 고유업무 외에 부서 업무 등 겹치기 출연이 다반사다. 월급은 대리보다 적을 때도 있다. 간부라서 연장근무수당을 신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친구가 주식으로 40억원을 벌었다는 소식을 듣고 “나도 그때 코스닥에서 안정주(安定株)로 갈아탔다면…” 후회도 하지만 이미 늦었다. 친구처럼 회사에서 드러내놓고 주식을 할 만큼 얼굴이 두껍지도 않다. 퇴근 후에라도 나만의 경쟁력, 나만의 재테크를 찾아 나서지만 말처럼 쉬운 건 아니다.

SK 기유(基油)마케팅팀의 박지원 과장(38). 입사 11년, “회사에 청춘을 다 바쳤다!” 많은 변화가 있었다. 팀제가 도입되면서 과장은 실무를 하는 팀원이 되었다. 팔걸이 의자에 앉아 도장이나 찍던 과장은 이제 없다.

그러나 사원의 일을 도와주는 책임까지 면한 건 아니다. 후배의 기안서도 돌봐줘야 하고 팀장이 없을 때 업무를 대행하는 것도 과장의 몫. 연봉제 도입이나 명예퇴직 신청 등 책임지는 건 어김없이 과장부터다.

노래방에서도 ‘낀 세대’인 건 마찬가지. 트로트세대와 랩세대 사이에서 갈 곳이 없다. 부장이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부르면 그러려니 해도, 과장이 부르면 구세대로 취급하는 게 후배들이다. 지난 송년회 때는 386가수 안치환의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가 간신히 박 과장을 살렸다.

회사는 과장인 그를 중견간부라 부른다. 회사의 허리, 기업에서 가장 중추적인 일꾼들. 회사를 이해하고 사원들을 독려하는 간부이면서 사원들의 의견을 대변해주는 선배이기도 하다.

하지만 5000여명 직원 중에 ‘널린 게 과장’. 이 가운데 임원으로 승진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보험회사나 외국회사에서 오라고 할 때 갈 걸 그랬나?

대학 동창들을 만나면 노후 걱정이 대화의 주류를 이룬다. 박 과장은 요즘 혼자 생각하는 시간이 부쩍 많아졌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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