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채청/개헌논의, 밀실 밖으로…

  • 입력 2001년 12월 30일 17시 44분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6공’은 흔히 노태우 정부를 뜻하는 것으로 통용됐다. 그렇다면 YS 정부는 7공화국인가. 그렇지 않다. 노태우 정부가 6공이라면 YS정부는 6공 2기 정부이고, 김대중 정부는 6공 3기 정부가 된다.

현 정부가 87년 6월 민주화항쟁의 산물인 ‘87년 체제’의 연속선상에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도 YS정부나 DJ정부와 6공은 별개라는 인식은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헌정질서도 중단되는 단절의 역사가 빚은 오류라고 할 수 있다. 87년 체제 이전까지 우리 헌법의 평균수명은 4년4개월, 공화국의 평균수명(통설 기준)은 7년11개월에 불과했다.

87년 체제는 12년 가까이 존속했던 1공화국의 기록을 이미 깼다. 87년의 9차 개정헌법도 8년 가까이 존속했던 7차 개정헌법(유신헌법)의 기록을 깬 지 오래. 무엇보다도 개헌의 민주적 정당성 확보와 우리 사회의 정치적 성숙이 장수의 주된 이유라고 생각한다. 87년 개헌은 헌정사상 최초로 여야 합의에 의해 평화적으로 이뤄진 것이었다.

그동안 고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90년 2월의 3당 합당이 첫 고비였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의 민정당과 YS의 민주당, 김종필 총재의 공화당이 내세운 합당 명분은 ‘현재의 정치구조가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지 않으므로 새로운 정치질서를 확립해 나간다’는 것이었다. 새로운 정치질서란 곧 내각제였으나, 밀실 합의였으므로 공동선언에는 명시되지 않았다. 그리고 합의는 곧 깨졌다.

97년 10월의 DJP 내각제 합의가 두번째 고비였다. 합의문까지 공개됐지만, 이 약속 또한 끝내 지켜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YS와 DJ의 집권에 결정적으로 기여했을 뿐인 두 차례의 내각제 합의와 파기는 상반된 측면의 두 가지 시사점이 있다. 하나는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개헌은 이제 결코 성사될 수 없다는 것. 개헌론자들이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다른 하나는 전환기의 개헌논의가 갖는, 무시할 수 없는 정치적 파장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 ‘국가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지 않은 정치구조’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상당 부분 존재함을 의미하는 것으로, 개헌반대론자들이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현재 다시 제기되고 있는 개헌론의 출발점은 ‘1노3김’의 정치적 타협의 소산이기도 한 5년 단임 대통령제의 폐단이라는 점에서 과거와는 다소 다르다. 개헌논의의 환경 역시 차이가 있다.

4년 중임 정·부통령제가 개헌론의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를 주도하는 세력은 여야의 비주류이다.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개헌논의 색채는 상대적으로 옅은 편이다. 각종 여론조사는 국민들의 개헌론에 대한 경계심도 꽤 완화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개헌이 당장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여부나 타당한지 여부와 논의는 별개일 수 있다. 개헌논의는 어쩌면 내년 대선 이후를 예비하기 위한 것이고, 개헌이 필요한지 여부까지 따져보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국가경영에 관한 개헌논의를 내년 대선에서의 정치적 이해득실 차원에서 바라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개헌론을 매개로 한 밀실합의와 담합의 재발을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최종 판단은 국민들에게 맡기고 진지하게 개헌론의 허실을 짚고 넘어가는 정치권의 당당한 자세가 요구된다.

임채청<정치부장>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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