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대실/쌀은 ‘바이오산업지대본’

  • 입력 2001년 12월 16일 18시 32분


20세기 초 중동지역에서 석유는 저주의 물질이었다. 더운 사막지대에서 농업용수나 마실 물은 고사하고 뜨거운 불구덩이만 안겨주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화학공학기술은 세상을 바꾸었다. 석유를 가공하여 석유화학산업의 시대를 열었고, 아랍의 산유국들은 하루아침에 부를 누리게 되었다.

현재 우리의 쌀 문제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21세기 바이오산업의 원료는 전분과 같은 탄수화물이기 때문이다. 석유화학산업과 마찬가지로 쌀도 가공기술이 문제이며 그 가격은 부차적인 문제다.

국내 탄수화물의 가공기술과 관련 산업은 초보적인 수준이다. 예로 제과 및 식품, 제약산업에서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포도당과 과당을 보자. 전분을 가수분해하여 만드는데, 1차 가공기술조차도 상당부분 외국 기술에 의존하고 있다.

또한 국내 전문연구기관이나 병원, 대학교, 제약업계에서 사용되는 고순도의 탄수화물 소재도 전량 수입하고 있다. 탄수화물 소재를 2차 가공하는 탄수화물 공학기술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런데 탄수화물에 생명공학기술을 가하면 항생제, 비타민 그리고 호르몬 등 수많은 바이오상품이 창출된다. 필자 실험실에서 사람 인슐린의 생산기술을 개발한 경험을 보면 공정기술의 효율 증대가 제일 중요한 사항이었을 뿐 원료인 포도당의 가격은 사실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

세계무역기구(WTO)체제에서 쌀 문제에 관해 정부 농업정책은 그 운영의 폭이 제한적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바이오산업에 대한 산업정책과 과학기술정책을 함께 연계하여 생각하면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다. 국가적으로 21세기 바이오산업의 면모를 갖추기 위해 생명공학기술의 고도화는 물론 탄수화물 원료의 확보 계획도 수립해야 한다. 또한 기존 화학기업이나 생물산업체들로 하여금 농산물 첨단 가공사업에 진입케 하여 국제 경쟁력 있는 바이오산업을 육성하는 것도 정부의 몫이다.

근년에 와서 듀폰이나 몬산토 등 세계 굴지의 화학회사들이 바이오산업으로 간판을 바꾸어 달고 맨 먼저 취한 조치가 농업 및 식물 관련회사들의 인수였다. 차제에 우리도 다른 나라의 유휴농지를 100년 간 임대하여 장기적인 바이오산업의 원료와 식량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는 등의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식량 자급도가 25% 수준밖에 안되기 때문이다.

한편 그간 소외되었던 ‘탄수화물공학’ 분야를 과학기술정책 차원에서 육성해야 한다. 1990년대 들어 일본은 이 분야를 국가적으로 지원하고 다져서 지금은 미국을 앞질렀다고 자부하고 있다. 여기서 이 분야의 국내 전문가 비율이 일본에 비해 1% 정도밖에 안됨을 지적하고 싶다.

농사는 21세기에도 역시 천하지대본이다. 석유화학산업을 대체할 바이오산업이 부상하기 때문이다. 머지않아 국내 바이오산업이 정상 궤도에 오르면 석유와 마찬가지로 전분이나 탄수화물의 원료 확보가 심각한 경제 현안으로 부상할 것이다.

이 대 실(한국생명공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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