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의문사 규명 거부해선 안된다

  • 입력 2001년 12월 16일 18시 31분


국군기무사령부의 행태가 대단히 실망스럽다. 지난달 말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관계자가 80년대 대학생 강제징집 및 ‘녹화사업’과 관련한 의문사 사건의 관련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기무사를 방문했으나 기무사는 이들의 출입조차 거부했다는 것이다. 기무사는 “당시 자료가 폐기됐고 향후 구체적으로 자료를 적시하면 찾아보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지만, 이는 지난 시절의 숱한 군(軍) 의문사 사건에 책임 있는 기관으로서 할 말이 아니다.

70, 80년대 학생운동 탄압과 정보 수집을 위해 군을 비롯한 관계기관이 집단적 조직적으로 개입했다는 것은 이제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이다. 10월에는 81년 11월부터 3년간 무려 1100여명의 대학생이 강제 징집됐다는 사실이 의문사진상규명위 조사로 공개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무고한 생명이 억울한 죽음을 당했다는 의혹도 그동안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최근에는 유신 시절의 대표적 의문사 중 하나였던 1973년 최종길(崔鍾吉) 전 서울대 법대 교수 사건이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의 타살이었다는 증언까지 나왔다.

그런데도 과거 대학생 강제 징집 및 녹화사업에 핵심 역할을 맡았던 기무사는 그동안 ‘담당 부서가 폐지됐고 관련자는 모두 퇴직했다’는 등 책임회피성 변명만 거듭해 왔다. 기무사는 언제까지 손바닥으로 햇빛을 가리려는 몸짓을 계속하고 있을 것인가. 이번에 기무사가 보여준 행태는 권력기관들이 부끄러운 과거를 밝히는 일에 소극적으로 대응하는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도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의문사진상규명위는 1999년 12월 특별법이 제정돼 2000년 10월에 출범한 대통령 소속기관이다. 특별법 1조에는 ‘민주화운동과 관련하여 의문의 죽음을 당한 사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함으로써 국민화합과 민주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돼 있다. 위원회 구성 자체가 1998년 10월부터 400여일간 계속된 의문사 유가족들의 국회 앞 천막농성으로 이뤄졌다. 어두웠던 과거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우리 시대의 소명이 돼 있는 것이다.

불행한 과거사는 뒤늦게나마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사건 당사자들이 치열하게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줄 때에 온전히 치유될 수 있다. 이번처럼 책임 있는 기관이 변명만 일삼는다면 작게는 유가족들의 한(恨)만 쌓여갈 뿐이고, 크게는 이 땅에 정의가 바로 서는 날이 요원해질 뿐이다. 기무사는 의문사 진상 규명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그것만이 역사 앞에 바로 서는 길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