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지식인, 그대 진정 고뇌하는가 '지식인의 종말'

  • 입력 2001년 12월 14일 18시 29분


마네의 에밀 졸라 초상화(1868)
마네의 에밀 졸라 초상화(1868)
◇ 지식인의 종말/레지 드브레 지음 강주헌 옮김/232쪽 1만3000원 예문

영상과 미디어가 범람하는 포스트 모던 시대에 지식인이란 무엇인가? 프랑스의 대표적 지성인 레지 드브레는 지식인을, 최초의 지식인과 최후의 지식인으로 분류한다. 최초의 지식인은 진지하고 성찰적이며 사회적 사명을 수행하는 자들이고, 최후의 지식인은 언론의 힘에 편승해 ‘매우 조그만 밥벌이를 이념으로 포장하는데 열중하는’ 자들이다.

저자가 작성한 마지막 세대 지식인의 임상보고서에 따르면, 고뇌하는 모습과 당당한 기백으로 청중을 매료한 (사르트르와 같은) 전 세대 지식인들과 달리, ‘환자’의 얼굴에 윤기가 흐르고, 언제나 건강에 넘친다. 집단 자폐증에 걸려있는 최후의 지식인들은 자신과 ‘우리’와의 연대감도 부족하고, 이미지와 미디어 신화에 도취돼 몽유병환자 같다. 자아도취에 빠진 그들은, 역사적 감각이나 통찰력도 없이 여전히 가르치려고 하며, 미디어의 장단에 맞춰 엉터리 주장을 크게 떠들어 대는 예측불능한 중증 환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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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여 년 전 드레퓌스 사건과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한다’를 계기로 본격적으로 태어난 프랑스 지식인들은 볼테르, 디드로, 달랑베르 등 선배 계몽주의자들에게 크게 빚지고 있다. 이들은 이성과 합리주의, 과학실험 정신으로 무장하여 구태의연한 카톨릭 종교와 절대왕정을 맹공했으며, 그 투쟁정신이 루소와 칸트의 사상을 포섭해 프랑스 대혁명을 불붙힌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후 드레퓌스 사건, 레지스탕스와 알제리 전쟁, 그리고 학생운동은 프랑스 지식인 사회가 성숙하고 강고해지는 계기를 마련했다.

낭만주의 문인과 지식인들의 기여 또한 결정적이었다. 대혁명 이후 급속한 세속화로 인해 사회는 매우 심한 정신적 공동(空洞)현상을 겪게 되었을 때, 문인들이 ‘세속적 사제’와 지식인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제’(귀족들의 고결한 윤리의식)를 자임하고 나섬으로써 이른바 지식인 ‘선지자의 시대’가 도래하였다.

레지 드브레가 말하는 ‘최초의 지식인’들은 명료한 비판력, 지적 노블레스(소명의식)와 동시에 선지자적 비전을 갖춘 자들이었다. 이를 계승하며 파리고등사범학교에서 알튀세르에게 사사받았던 드브레 자신도, 볼리비아에서 체 게바라와 함께 이념을 정열로 불태웠으며, 칠레 야옌데 정권을 현장에서 몸으로 옹호했다.

그러나 급속한 매체환경의 변화에 따라, 영상과 미디어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약삭빠른 ‘최후의 지식인’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최후의 지식인의 속물근성(스노비즘)에 대한 드브레의 풍자와 냉소는 통렬하다. 그는 지식인이 아무리 ‘길에 버려진 뱀 허물’이나 ‘게으른 자의 그림자’라고 하더라도 최초의 지식인의 ‘노블레스 오블리제’에 대한 향수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그것만이 지식인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 책이 프랑스 지식인 사회를 그리고 있지만, 영상 시대에 지식인의 역할을 재위치시키는 시도로서 의미를 지닌다. 다만 아쉬운 점은 보드리야르, 푸코, 부르디외, 데리다, 라캉, 들뢰즈 등 인문학의 대가들에 대한 언급이 지극히 제한되어 있어, 이 책이 현대 프랑스 지식인 지형의 포괄적이고 바른 유일한 독법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것이다.

김동윤(건국대 교수 겸 ‘비평’ 편집위원·불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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