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죽음도 해독시킬수 없는 독침 '유언'

  • 입력 2001년 12월 14일 18시 29분


◇ 유언/산도르 마라이 소설/197쪽 8000원 솔

지난 여름 ‘열정’이라는 번역소설을 읽었다. 뒷면에 저자 산도르 마라이(S´andor M´arai·1900∼1989)를 헝가리의 대문호라고 소개하고 있었지만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대문호라는 전제 때문에 오히려 선뜻 읽을 엄두가 안나는 책이었는데 펼쳐들자마자 첫장부터 빨려들고 말았다. 지적이면서 시적이고 간결하고도 휘황한 문장에 빠져들면서 나는 자주 스스로를 경계했다. 현혹되어서는 안돼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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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빨려들고 말았다. 그리하여 운명이 괴물처럼 도사리고 있는 인간이라는 심연의 저 맡바닥을 친 것처럼 전율했다. 죽음도 해독 시킬수 없는 독침(毒針)같은 사랑과 배신, 아무도 제어할 수 없는 들림, 그런 게 운명이라는 게 아닐까. 최근에 같은 작가의 ‘유언’을 읽었다. 문장이 전작보다 덜 휘황해서 현혹될까봐 경계하지 않고 편안하게 읽을 수가 있었다. 전작이라고 말한 것은 내가 읽은 순서를 말하는 것일뿐 작가의 약력을 보니 ‘유언’이 ‘열정’보다 3년 먼저 쓴 작품이었다.

두 소설의 시작은 비슷하다. ‘열정’의 남자 주인공이 40여만에 홀연 내방을 통고해온 친구를 기다리는 장면에서 시작되는 것처럼 ‘유언’ 또한 여주인공이 20년만에 나타날 형부이자 애인을 기다리는 시간부터 시작된다. 둘다 곧 나타날 인간은 배신자들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열정’에서는 배신자를 대접하기 위해 오래 된 귀족집안의 온갖 우안한 집기와 관습을 살려내는 반면 ‘유언’에서는 겨우 체면 유지나 하면서 사는 집안의 유일한 사치인 은식기를 감출 궁리부터한다. 그런 설정은 물론 배신자의 사람됨과 무관하지 않다.

‘열정’의 배신자가 쇼팽의 ‘폴로네즈 환상곡’을 “초지상적인 마차가 멸망을, 무(無)를 향해 달려가면서 하늘을 가르고 먼지를 일으키듯이, 빛속에서 금빛조각들이 맴돌 듯이” 위험하게 연주하는, 악보대로 밖에 연주하지 못하는 인간과는 종류가 다른 사람인 반면 ‘유언’에 배신자는 새속이하로 비천하고 좀스럽다. 그는 작은 이익을 위해 친구를 속이고 공문서를 위조하고 부자도 아닌 착한 여자를 등쳐먹을 궁리나 하는 인간 쓰레기이고, 원하는 대로 생각해버리는 거짓말장이이다.

그가 그런 인간이라는 걸 알면서도 여자는 이십년전 그 남자로부터 지켜내고 간신히 유지해온 최소한의 품위있는 생활을 송두리째 사기 당할 각오를 한다. 마치 진짜 주인에게 반납이라도 하듯이. 왜일까. 일생에 단한번 마지막으로 위험에 처해보고 싶어서이다. 위험이 없는 무사안일이 결코 진실이 아니란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사람은 왜 사는 걸까. 태어났으니까 할 수 없이 사는 게 아니라면 무엇엔가 사로잡혔기 때문이 아닐까. 고귀하고 진실한 것만이 사람을 사로잡는 건 아니다. 너절한 거짓말장이에게 사로잡히지 말란 법도 없다. 그건 위험한 일이다. 이 책들은 둘다 위험에 대한 매혹을 운명처럼 타고난 사람들 이야기이다. 어쩌면 내 안에 숨어있던 위험이 날을 세우고 내가 선택한 아무것도 안일어나는 삶을 찔러볼지도 모르는 위험한 책이다. 김인순 옮김, 원제 ‘Das Verm¨achtnis der Eszter’(1939).

박완서(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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