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

  • 입력 2001년 12월 14일 18시 29분


◇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이성복교수

◇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했는가/이성복교수

‘정든 유곽에서’의 시인 이성복 교수(49·명지대 문예창작과·사진)가 두 권의 산문집을 새 단장해 선보였다.

잠언집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문학동네)와 산문집 ‘나는 왜 비에 젖은 석류 꽃잎에 대해 아무 말도 못했는가’(〃).

둘 다 새 책은 아니다. 앞의 책은 1990년 나온 아포리즘집 ‘그대에게 가는 먼길’의 단상을 새롭게 추린 것이고, 뒤의 책은 90년 94년 나온 산문집 두 권에서 뽑은 글과 그 후에 낸 산문을 가려 모은 것이다.

잠언집은 특히 30대 초 중반 독자에게는 특별한 감회를 안겨줄 것이다. 90년대초 혼돈의 시기를 온몸으로 겪은 문학도에게는 이 잠언이 불순한 시절에 맛보는 예술에 대한 맑은 감로주 한모금이었을 것이다.

이들은 아마 습작 노트 첫장에 “서정 시인은 비정해야 한다” 혹은 “시(詩)-정신의 수음행위(手淫行爲). 그 옅은 피로감과 허탈함과 죄의식”과 같은 글귀를 옮겨 적었으리.

고통과 상처, 병과 허무, 사랑과 이별에 대한 시인의 깊은 사유는 감수성 예민한 세대의 가슴에 선명한 인상을 남기기에 족했다.

“불을 쬐듯이 불행을 쬘 것, 다만 너 자신의 살갗으로!” 혹은 “너는 삶의 벼랑에 핀 꽃이다. 너를 꺾어라!”, 아니면 “창살은 네 눈속에 있다” 같은 말들.

애절한 연서에 “사랑이 없는 곳에 지옥도 없다”나 “사랑 없이는 잔인할 수도 없다” 같은 문구를 훔쳐 적은 이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10여년이란 세월의 풍화를 겪었지만 그의 아포리즘은 녹슬거나 낡아보이지 않는다. 아니, 다시 읽다보면 열혈시절에는 미처 깨닫지 못한 삶의 진정성과 대면하면서 이마가 환해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런 잠언의 해독에는 적지않은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므로.

“사랑은 처음에 온다. 지혜가 끝에 오는 것과 같이. 처음이든 끝이든 모든 공식은 감옥이다.” “희망의 상실은 절망이 아니라 타락이다.” “한 절망에 대한 위안은 더 큰 절망에 있다.”

함께 나온 산문집은 잠언집에서 농밀하게 보여준 시론을 풀어쓴 보론격인 작품이다. “섬세하고 예민한 고양이”와 같은 이씨가 어떻게 일상의 작은 경험을 꼭꼭 씹어서 시를 만드는지, “왜 아직도 시인가”에 대한 답변을 들을 수 있다. 그에게 시란 곧 “시에 대한 사랑”이며, “시에 대한 사랑”은 곧 “삶에 대한 사랑”이었던 것이다.

☞ '네 고통은 나뭇잎…' 상세정보 보기 & 구매하기

☞ '나는 왜 비에…' 상세정보 보기 & 구매하기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