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아의 책사람세상]'빨갱이'로부터의 구출

  • 입력 2001년 12월 14일 18시 11분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활동은 지금까지 두 개의 죽음을 망각에서 구출했다. 수지 김의 간첩사건, 최종길 교수의 의문사가 바로 그것이다. 이 두 죽음은 지금까지 ‘빨갱이’라는 이름으로 접근이 차단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빨갱이’라는 단어 하나가 모든 비밀을 은폐하는 으름장이 되었던 불행한 시절의 빚을, 이제야 전 사회가 갚아나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의문사는 우리에게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프랑스의 계몽주의 철학자 볼테르의 ‘관용론’(한길사·2001)은 18세기에 일어난 한 ‘의문사’에 대한 책이다. 어느 집 식구들이 자기네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그 집 아들의 자살을 그 집 식구들이 범한 살인이라고 몰아붙인 지역 사회와 교회, 그 혐의를 받아들여 사형을 집행한 재판정에 대한 통렬한 고발이 담겨 있다.

“관용을 누리기 위해 가장 먼저 할 일은 광신을 거부하는 것이다.” “더 큰 선을 이루기 위해 작은 악을 행해도 된다고 그 누구도 허락받은 적은 없다”는 볼테르의 말을 보라. 이 앞에서는 ‘빨갱이는 잡아 족쳐야 하고 거기에 의문을 제기하는 자도 빨갱이”라는 독재의 논리가 비루하기 짝이 없다.

지금까지 ‘빨갱이’에 대한 탄압이 ‘법’의 이름으로 정당화되어 왔다는 것도 슬픈 일이다. 동국대 조국 교수의 ‘양심과 사상의 자유를 위하여’(책세상·2001)는 “체제 수호를 위해 사용되는 수단이 그 목적에 비해 과도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중대하게 침해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위험할 뿐만 아니라 법의 원리에도 어긋난다는 점을 신선하게 보여준다.

아직 위정자의 의지와 법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서 원리원칙을 이야기하는 것은 ‘공론’으로 치부될지 모르지만, 그 ‘공론’이 바로 우리의 자유와 양심이라는 점을 이 책을 보면서 다시 되새겨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뭐니뭐니해도 매카시즘에 대한 가장 생생한 고발은 아서 밀러의 ‘세일럼의 마녀들’(민음사·1989)일 것이다. 수없이 무대 위에 올려지고 영화화된 이 희곡은, 우리가 공동선을 위해 저지른다고 믿는 ‘필요악’이 끔찍할 뿐만 아니라 사실은 전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수 많은 개개인이 어우러져 사는 사회에서 작은 부정과 허위와 독선은 나중에 큰 재난으로 다가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숱하게 경험했다. ‘의문사’들의 ‘해답’은 그래서 중요하다.(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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