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월드컵]‘히딩크표 축구’강해졌다

  • 입력 2001년 12월 10일 17시 43분


한국축구대표팀 ‘히딩크 사단’이 ‘천의 얼굴’로 진화하고 있다.

베스트11은 물론 선수 포지션, 공격루트, 수비 조직력 등이 매 경기 숨가쁜 변신을 거듭하면서 대표팀 색깔 전체가 ‘현란한 유채색’으로 바뀌고 있는 것. 롱패스에 이은 측면돌파, 맨투맨 밀착 마크 등 공식처럼 굳어졌던 옛 플레이 장면은 이제 빛 바랜 흑백 사진첩 속에서 찾아봐야 할 정도다.

▽변신의 첫 출발, 포지션 파괴〓거스 히딩크 감독은 1월 취임 때부터 강조했던 ‘올라운드 플레이어’ 중용 원칙을 일관되게 시행했고 과감한 공격 전술을 실험했던 9일 미국전에서 그 위력을 입증했다.

이날 한국의 포지션 변경은 상대팀인 미국으로서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다.

한 선수가 고정된 위치를 우직하게 지킨 미국과 달리 한국은 경기 시작부터 황선홍 이천수 최태욱 3각 공격라인이 전후 좌우를 종횡무진 누비며 상대 수비진을 교란했다. 후반 31분엔 수비수 최진철 대신 오른쪽 미드필더 최성용을 투입하면서 유상철 대신 송종국을 중앙 수비로 앞세웠고 35분엔 박지성 대신 김도근을 교체하면서 또 한차례 미드필드 조직에 큰 폭의 변화를 줬다.

이 같은 과정 속에 과거 한국 공격의 출발역이자 수비의 종착역 역할을 했던 홍명보의 존재 의미가 희미해지고 강한 압박과 짧고 빠른 패스로 무장한 전 선수가 공수 양면에 두루 참여하게 됐다. 대표팀 전체가 하나의 유기체로 살아 꿈틀대고 있는 것.

▽대표팀 주전, 아무도 몰라〓이처럼 각 선수 포지션이 유동적으로 변하면서 누구 하나 붙박이 주전을 자신할 수도 없게 됐다. 고종수가 부상으로 자리를 비운 사이 신예 최태욱이 무서운 기세로 떠올랐고 홍명보가 붙박이였던 중앙 수비도 송종국 유상철이 경합을 하고 있다. 황선홍 설기현 김도훈 최용수 이동국이 치열한 경합을 벌여야 하는 최전방은 물론 골키퍼 역시 김병지가 합류하면서 이운재와 한판 대결을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표팀 내 주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전체 선수가 팽팽한 긴장감 속에 매 경기 기대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는 것은 불문가지. 주전 선수 한 두명의 컨디션에 울고 웃던 아픔을 덜었다는 점도 보너스 효과다.

▽강한 체력, 그것만이 살길〓이 같은 배경을 앞세워 대표팀 플레이스타일도 일대 변혁을 겪고 있다. 롱패스가 사라진 대신 짧고 강한 패스워크가 좋아지면서 압박에 이은 순간 역습이 차츰 그 위력을 드러내고 있다. 마무리가 약해 아직 확실한 승리와는 거리가 있지만 어느 팀을 만나도 적어도 상대 문전까지는 대등한 경기를 펼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 90이탈리아월드컵과 94미국월드컵을 현장에서 취재했던 로이터통신 한국지사 마틴 네저키 편집국장은 이날 경기를 보고 “한국의 전반 플레이는 전술적으로 매우 역동적이었다”며 “전반만 같다면 미국은 물론 월드컵 본선 같은 조에 편성된 폴란드나 포르투갈 등 유럽팀과도 충분히 맞설 수 있겠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히딩크 감독의 축구 스타일을 펼쳐내기 위해 엄청난 체력이 필요하다는 점. 미국전 후반 한국 조직력이 느슨해진 것도 체력이 급격히 떨어지면서였다. 히딩크 감독이 소집 때마다 체력 테스트를 선수 선발의 제1기준으로 삼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귀포〓배극인기자>bae215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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