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생생한 실험사진, 호기심 낳는 최고의 스승"

  • 입력 2001년 12월 6일 18시 37분


'깨지는 전등'을 촬영하고 있는 이만홍씨.
'깨지는 전등'을 촬영하고 있는 이만홍씨.
“탕.” “쨍그랑.”

날카로운 총소리와 함께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다. 동시에 카메라 플래시가 번쩍 터졌다.

불을 켜자 막대기에 달린 백열전구에는 커다란 구멍이 났다. 폴라로이드 사진에는 총알이 전구를 뚫고 지나가면서 유리가 박살나는 장면이 실감나게 찍혀 있었다. 그러나 사진을 본 이만홍씨(43)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시 합시다.” 그는 전구를 여섯 개나 박살낸 뒤에야 마음에 드는 사진을 얻을 수 있었다.

사진작가 이만홍씨.

요즘 초등학교 과학 교과서에는 그가 찍은 사진들로 가득하다. 미술품 전문 사진작가로 유명한 그는 지난해 시작된 7차 교육과정에서 일급 사진작가로는 처음으로 초등학교 과학 사진을 담당했다. 교과서 작업을 위해 그가 찍은 사진만 3000장이 넘는다. 특히 그가 찍은 과학 실험 사진은 예전에는 볼 수 없었던 장면이 많아 과학 사진의 질을 한 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과학 사진은 진실돼야 합니다. 과학 사진은 거짓말하면 안 돼요. 안 되는 것을 연출해서 마치 되는 것처럼 찍으면 절대로 안 됩니다.”

실험이 성공하는 ‘순간’을 잡기 위해 그는 끈질기게 기다렸다. 물에서 거품이 부글부글 올라오는 사진을 찍으려면 약품을 섞는 편법을 쓸 수도 있었다. 그러자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나 이씨는 그런 연출을 모두 거부했다. 대신 맥가이버처럼 온갖 공구와 사진 기법, 창의력을 발휘해 ‘과학’을 사진에 담았다. 카메라를 든 과학자였다.

“한번은 빛을 찍자고 하더군요. 평생 빛을 다뤄온 사람인데도 처음에는 황당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주문이든 이씨는 ‘안 된다’고 말하는 법이 없었다. 이씨를 포함한 교과서 제작 팀은 고민 끝에 흔히 볼 수 있는 손전등을 생각해냈다. 손전등 앞에 물컵과 빗을 놓았다. 손전등에서 나온 빛은 빗살 사이를 지나가며 몇 개의 선으로 바뀌었다. 이 빛은 돋보기를 만나면 모이고, 오목 렌즈를 만나면 넓게 퍼졌다. 그의 사진에는 그 빛들이 생생하게 찍혔다. 과거 돋보기로 종이를 태우던 구태의연한 사진과는 확연히 달랐다.

그런 그도 실패한 사진이 있다. ‘물의 대류’를 찍는 일이었다. 물 색깔을 달리 해보고, 톱밥을 넣어보고, 물통에 관도 설치하는 등 며칠을 애썼지만 만족스러운 사진은 나오지 않았다. 어렵다고 고개를 흔들면서도 그는 꼭 다시 도전할 것이라며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사진을 찍기 전 프랑스의 초등학교 과학 교과서를 봤다. 책의 90%가 사진이었고, 모두 멋있는 작품이었다. 보기만 해도 호기심을 일으키는 것이 과학 사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우리나라 교과서의 사진은 밋밋했다. 흉내만 냈지 과학을 보여주지 못했다. 그는 이런 모습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들이 초등학생이었기에 더욱 정성들여 찍었다. 교과서가 나오는 날 아들이 학교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말을 하며 그는 뿌듯해 했다.

“과학 사진을 찍어 보니 우리 생활이 모두 과학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사진 일을 20년 이상 한 저도 태양빛이 직진하는 모습을 찍으면서 너무 신기했어요. 과학을 알면 남들이 두 걸음 갈 때 저는 한 걸음으로도 충분하니 얼마나 편리합니까.”

<김상연동아사이언스기자>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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