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신일/수능 총점정보 공개해야

  • 입력 2001년 12월 4일 18시 37분


수능성적을 통보하면서 수험생들에게 총점을 공개하지 않아 자신의 상대적 위치를 알 수 없는 수험생과 학부모들이 엄청난 심리적 공황을 겪고 있다. 불만을 넘어 분노까지 드러내고 있다.

▼수험생-진학교사 큰 혼란▼

이러한 혼란은 수능등급제 실시를 결정할 때부터 예상된 것이었다. 현실적으로 대학간, 학과간 격차가 존재할 뿐만 아니라 상대적인 점수 비교 경쟁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입시제도에서 수험생에게 자신의 상대적 위치를 정확히 알려주지 않는 것은 눈 감고 뛰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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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총점 정보를 교육 당국이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입시에서 수능의 비중을 낮춘다는 이유로 수험생에게만 감추고 있는 것이다. 대학은 수능등급제 실시에도 불구하고 수험생들의 영역별 점수를 합산함으로써 응시자간의 상대적 위치를 간단히 파악할 수 있다. 즉, 대학은 결과적으로 수능성적에 관한 모든 정보를 확보하고 예전처럼 이 점수로 학생들을 뽑을 수 있지만, 수험생은 결정적인 정보를 갖지 못해 답답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여러 주장들이 있을 수 있으나 현재의 상황에서는 수험생들에게 총점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옳다.

난이도 파동이 겹친 금년 수능 혼란의 본질은 1998년에 발표한 새 대입제도에 기인한다. 2002학년도, 즉 이번 입시부터 시행하기로 결정한 대입제도의 근간은 고교내신과 개인별 특성 및 재능의 전형비중을 크게 높이는 대신 수능의 비중을 대폭 낮추는 것이었다. 당시 그 방향은 좋으나 커다란 방향 전환이고 많은 준비가 필요하므로 6∼10년의 준비 기간을 거쳐 혼란을 막자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대학별 본고사가 없는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대입전형의 핵심정보인 수능의 비중을 대폭 낮춘다는 것은 그에 대신할 신뢰할 수 있는 전형 자료를 개발해야 함을 의미한다. 내신, 면접, 특별재능 평가 등을 당시 정부는 내세웠다. 그러므로 정부, 대학, 고교가 새로운 전형자료의 확보 체제와 방법을 신속히 확립해야 했다.

그러나 대학들은 지원자들의 능력, 적성, 재능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20∼30명의 입시전문가들이 일년 내내 활동하는 외국대학들의 입학처를 아직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다. 고교들은 내신을 인위적으로 높이거나 조작하는 사건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부는 이를 원천적으로 막아 대학과 학부모들이 신뢰할 내신을 제공할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해야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실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상위권 대학일수록 수능에 대한 의존도는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교육인적자원부는 수능을 대신할 다른 전형자료의 개발은 소홀히 하면서 지속적으로 수능의 난이도를 낮추어왔다. 그러다 지난해 ‘물 수능 논란’ 이후 상위권 대학들이 난이도 상향을 요구했다. 그 결과 올해 수능의 난이도 상향과 등급제 실시에 따른 심리적 공황까지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1998년 당시 중3이던 금년 응시생들은 “시험 없는 대입제도”라는 구호를 귀가 아프게 들었고, 더욱이 수능의 난이도가 잇따라 낮아졌으므로 새 대입제도의 본격적 실시를 믿어왔다는 점이다. 그러나 새 제도의 첫 번째 적용 집단인 이번 응시생들과 부모들은 정부가 약속한 새 제도의 기본 방향의 수혜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되고 있다.

▼난이도 인위적 조절 막아야▼

정부가 일단 발표한 정책임을 내세워 총점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 정부는 당장 올해 입시를 위해 현 시점에서 수능에 관한 모든 정보를 수험생과 고교에 제공하고 장기적으로 입시제도 개선을 위해 다음 사항을 실천할 것을 제안한다.

첫째, 신뢰할 수 있는 다른 공정한 전형자료를 확보할 때까지 수능의 내용과 난이도를 인위적으로 바꾸지 말아야 한다. 둘째, 장기적으로는 수능 같은 획일적 시험의 비중을 대폭 줄이기 위해 각 대학에 입학전담 전문 부서를 설치해 다양한 평가와 전형방법을 개발하도록 지원해야 한다. 셋째, 고교내신의 공신력을 확립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시급히 수립해야 한다. 이것은 고교 교육 정상화의 사활이 걸린 문제이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입시정책을 절대로 대증요법식으로 다루지 말아야 한다.

김신일(서울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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