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내안의 적… 은밀한 욕망 '적의 화장법'

  • 입력 2001년 11월 30일 18시 22분


적의 화장법/아멜리 노통 지음/168쪽 6800원 문학세계사

우리 마음 깊숙한 곳에 자신도 모르는 은밀한 욕망이 숨어있다고 한다. 평소에는 도덕적 자아에 짓눌려 감히 기를 펴지 못하던 내 속에 있는 또다른 나는 어느 순간, 짙은 화장으로 감시의 눈을 따돌리고 튀어나와 우리의 정체성에 위협을 가하기도 한다.

아멜리 노통(Am´elie Nothomb·34)의 최근 소설 ‘적의 화장법’에서는 이 분열된 자아의 한판 사투가 펼쳐진다. 나의 일부이자 나의 적이기도 한 이 욕망 덩어리는 교활하고 집요한 입심으로 마침내 나를 자살로 몰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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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대화체로 이뤄진 이 소설을 읽기에 앞서 그 날 하루 다른 급한 일이 없는지 둘러보아야 한다. 한번 첫 장을 펼쳤다가는 마지막 장을 덮기 전까지 작가의 손아귀에서 도통 벗어날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1992년 ‘살인자의 건강법’으로 등단한 이래 꾸준히 발표한 열댓 권의 소설로 이미 수 백만의 프랑스 독자를 사로잡은 바 있다. 소설계뿐만 아니라 연극, 방송, 신문, 잡지 등 온갖 매체를 휘젖고 다니는 그녀 모습을 보다보면 도대체 프랑스 문단에는 아멜리 노통만 있는 것일까 의아해질 정도다.

노통은 자칭 독서광으로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섭렵했고, 고전을 줄줄이 꿰고 있는 작가다. 이런 인문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종횡무진 전개되는 그녀의 상상력은 쉽게 고갈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벨기에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일본, 중국, 미국 등지에서 보낸 유년기 체험도 그녀의 든든한 문학적 밑천이다. “예술가는 만리 여행과 만 권 독서로 만들어진다”는 옛말이 결코 빈 말이 아닌 것이다.

근래 들어 우리 사이에 남용되는 ‘엽기적’이란 표현이 딱 들어맞는 음산한 묘사와 반전을 거듭하는 치밀한 플롯이 긴장된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냉소적 재치와 해박한 지식이 번득이는 인물 간의 대화는 어깨 너머로만 들어도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든다.

그녀의 대화체 문장에는 경박한 채팅 언어만 난무하는 세태에 거스르는 논리와 품격이 스며 있다. 그러니 우리말 번역본에 붙은 “지금 프랑스는 아멜리 노통 열풍!”이란 말도 오로지 허풍스런 광고 문안만은 아니다.

우리말로 옮겨지면 자칫 대화의 묘미가 무뎌지기 일쑤지만 이 소설은 번역작품이란 사실을 잊게 할 만큼 대화체가 살아있고 더구나 자상한 역주까지 풍부하니 독자로서는 고마운 일이다.

이 작품외에 1999년에 국내 번역된 ‘사랑의 파괴’(열린책들)는 중국에서 보낸 유년시절이 그려진 자전적 소설이다. “유년의 사악함과 잔인함, 순진무구, 절대에 대한 감각, 아슬아슬한 놀이를 참신하고 유쾌하게 보여 준다”는 평가를 받은 대표작이다. 이와 함께 작년에 번역 출간된 ‘반박’(열린책들)을 함께 읽는다면 프랑스 독서계의 ‘아멜리 노통 현상’에 어느 정도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성귀수 옮김, 원제 ‘Cosm´etique de l’ennemi’(2001).

이재룡(숭실대 불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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