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47인의 사무라이는 왜 할복을 '주신구라'

  • 입력 2001년 11월 30일 18시 15분


주신구라/ 다케다 이즈모 외/ 225쪽 1만원 민음사

1701년 에도성(현 도쿄)에서 사소한 문제로 고급무사들 사이에 칼부림 사건이 있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이 사건이 훗날 일본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고전 ‘주신구라’의 모태가 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거나 당시 최고 권력자인 쇼군은 금지된 장소에서 칼을 빼든 아코번의 영주 아사노로 하여금 할복하도록 함으로써 사건을 종결지었다. 그러나 진짜 사건은 그 다음부터이다. 죽은 아사노의 가신이었던 47인의 무사들이 다음 해인 1702년에 주군의 복수를 감행한 후 전원이 할복한 것이다.

☞ 도서 상세정보 보기 & 구매하기

근세 일본을 뒤흔들었던 이 실제 사건은 그 후 일본을 대표하는 전통예능인 가부키와 조루리(인형극)를 비롯하여 우키요에(에도시대의 채색판화) 및 각종 문학장르와 현대의 영화, 연극, 애니메이션, TV드라마에 이르기까지 가장 인기있는 소재로 수없이 윤색되고 재현되어 왔다. 이 책은 그 중 하나인 다케다 이즈모의 가부키 대본 ‘가나데혼 주신구라’(1748년작)의 번역서이다.

도대체 일본열도가 이런 지나간 복수사건에 열광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 책을 읽다 보면 왠지 납득이 갈 것만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우선 ‘주신구라’는 흥미진진한 이야깃거리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단순한 여흥거리로만 끝나지는 않는다.

명예와 의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에 연연하지 않으며 충성을 종교처럼 신앙하는 무사들, 뇌물과 여색을 밝히는 비열한 관료, 사랑하는 남편의 할복장면을 옆에서 지켜보지 않을 수 없었던 여인, 혹은 남편의 대의를 위해 기꺼이 유녀로 전락하는 여인이 등장한다. 전율적인 폭력성의 무차별적인 노출이 있는가 하면 애절한 슬픔과 분노가 어느새 감동의 눈물로 흘러내리는 반전 또한 곳곳에 숨어있다.

영화 ‘세상의 모든 아침’은 삶은 아름답지만 잔인한 것이라고 말한다. ‘주신구라’에 열광하는 일본인이라면 누구보다도 이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할 것이다.

“꽃은 벚꽃, 사람은 무사”라는 유명한 일본속담의 출처가 된 이 책을 덮으면서, 그러나 우린 이렇게 반문해 보자. 삶은 잔인하지만 아름다운 것이라고 말이다. 최관 옮김, 원제 ‘忠臣藏’(1748).

박규태(한국종교문화연구소 연구위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