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증오에서 용서의 정치로 '적을 위한 윤리…'

  • 입력 2001년 11월 30일 18시 01분


적을 위한 윤리:사죄와 용서의 정치 윤리/ 도널드 W 슈라이버 2세 지음 서광선 장윤재 옮김/ 522쪽 1만6000원 이화여대 출판부

정치가 품격을 잃어버리고 조롱의 대상이 되어버린 마당에 정치 윤리를 말하는 것은 그 자체가 냉소거리다. 그러나 냉소의 두꺼운 벽은 이 책에서 단숨에 허물어진다.

☞ 도서 상세정보 보기 & 구매하기

미국 유니온신학대학원 총장을 지낸 저자는 빡빡한 개념을 끌어들이는 대신에 서구 역사를 꿰뚫는 이야기를 통해 ‘용서’의 정치를 풀이하고 설득코자 한다.

책은 고대 그리스와 정통 헤브루에서 시작한다. 삶의 공동체를 지키기 위해서는 용서가 필수불가결하다.

서로가 겪는 고통을 이해할 수 있는 ‘감정 이입’과 ‘연민’ 그리고 복수를 자제하고 ‘새로운’ 공동체의 결속과 연대로 나아가는 행위, 그것이 용서의 차원이다. 용서의 의미는 기독교에서 더욱 분명해 진다.

한나 아렌트의 말처럼 예수는 “용서의 역할을 발견한 사람”이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의 삶은 용서에 기초하여 서로를 받아들이는 ‘대안 공동체’ 안에서 이뤄졌다.

용서의 공공성은 이후 크게 퇴색했다. 종교 의례와 제도 속에서 용서는 사사로운 개인의 영역으로 퇴거하여 축소됐던 것이다. 용서는 기껏 수도원이나 교당 속에 갇힌 종교의 언어로 남아 있었다. 정치라는 공공 영역과 용서가 이렇듯 서로 어색하게 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계몽주의의 윤리 담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고립된 개인을 치켜세운 나머지 공동체의 의미는 지나쳐버리고 용서 따위는 불필요한 것으로 여겼다.

보복과 전쟁 속에 끊임없이 휘말려 들게 된 오늘에도, 용서는 좀처럼 사사로운 공간으로부터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공의 자리로 다시 들어서야 한다. 역사의 망각과 체념으로가 아니라 역사의 기억과 희망의 길잡이로서 말이다.

악의 이야기를 되새기면서도 보복의 유혹에 굴하지 않고 수난의 역사를 잊지 않으면서도 사회 구성원 모두와 함께 새로운 공동체의 삶을 만들어가고자 하는 ‘용서’를 실천해야 한다.

이것은 생명의 확인이자 ‘생명의 정치’를 바탕짓는 힘이며, 분열을 넘어 공동체답게 함께 어울리는 ‘공동체의 정치’가 확보해야 할 조건이다.

다행히도 용서의 용기는 현실 정치로부터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독일은 나치의 과거를 집합체 전체의 죄로 고백하면서 용서를 구하고 그 뜻을 실천에 옮겨 왔다.

일본은 기억보다는 차라리 망각에 기울어져 있지만 ‘사죄’의 문제는 계속 논의되고 있다. 흑인 문제에 대하여 사죄하고 보상해야 한다는 미국인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소수인으로 겪은 고통에도 불구하고 시민 공동체로 함께 살고자 하는 흑인들의 ‘용서’와 그 용기는 백인들에게 깊은 가르침이 되고 있다.

이 책은 미국의 윤리학자가 미국인들을 위해 쓴 것이다. 그러나 옮긴이들이 ‘후기’에 적고 있는 것과 같이, 우리가 겪은 폭력과 전쟁 그리고 다가올 통일을 생각할 때 용서의 정치는 우리와 동떨어진 주제일 수 없다. 용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민족에게 공동체는 언제나 허울로서만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우리가 물어야 할 물음은 있다. 용서의 깊은 문화 전통을 가지지 못한 사회에서 그 용서의 활력은 어디로부터 나올 것인가.

박영신(연세대 사회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