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검찰총장의 뻔뻔한 발언

  • 입력 2001년 11월 28일 18시 52분


검찰총장의 국회 출석을 놓고 여야가 팽팽히 맞서는 대치 정국에서 터져나온 신승남(愼承男) 검찰총장의 광주 발언은 시기적으로도 부적절할뿐더러 현실 인식도 크게 잘못됐다. “원칙과 정도에 따라 공평무사하게 업무를 처리해왔다. 아무 잘못도 없는데 나와라 그만두라 하고 있다”는 답변은 지금 검찰이 처한 상황을 너무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검찰의 위상이 땅에 떨어지는 사건이 줄을 이었다. 정현준 게이트 관련자로부터 돈을 받은 국가정보원 김형윤 전 경제단장을 슬그머니 봐줬다가 재수사해 구속했다. 서류를 압류하고 피의자를 데려왔다가 하루 만에 풀어준 이용호 게이트에서는 신 총장이 스스로 동생의 연루사실을 털어놓아야 했다. 대검이 불신에 쌓이자 검찰 사상 처음으로 특별감찰본부가 설치돼 고검장 등 검찰 간부 3명이 옷을 벗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부장검사가 사기사건 고소인에게 정치권과의 관계를 털어놓은 녹취록이 공개돼 파문을 빚고 사직한 사건도 있었다.

치욕적인 감찰수사를 진행하고서도 국민의 신뢰를 얻는데 실패해 국회에서 여야가 특별검사제도를 시행하기로 합의해 놓은 상태다. 오죽하면 여당 의원의 입에서까지 ‘썩은 검찰’ 운운하는 발언이 나왔겠는가. 그럼에도 공연한 사람을 ‘나와라’ ‘그만두라’ 한다는 식의 언동은 검찰을 보는 국민의 시선과 동떨어진 태도다.

신 총장은 이용호 사건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치면서 “옷 로비 사건에 대한 특검이 실시됐지만 검찰의 수사가 제대로 됐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말했다. 이용호 사건에 대한 특별감찰 수사가 검찰의 내부 비리를 엄정하게 밝혀냈는지에 대해서는 특검이 수사를 해봐야 알겠지만 옷로비 사건 평가는 사실과 다르다. 검찰은 이형자씨를 기소했지만 법원은 이씨에 대해 무죄판결을 내리는 등 특검의 결론을 대부분 받아들였다.

신 총장은 ‘검찰은 정치와 거리가 멀다’고 말했지만 오늘날 검찰의 독립성과 공정성이 의심받는 현실은 검찰이 정치와 너무 가깝기 때문에 빚어진 현상이다. 역대 정권에서 내내 시녀 노릇을 한 조직인데 나에게만 독야청청하라고 하느냐고 따진다면 솔직하다는 평이라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30년 동안의 검찰총장 국회 불출석 관행이 이제 와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최근 검찰권 행사가 정치권력에 의해 너무 자주 흔들리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다.

지금은 ‘잘못이 없다’고 버틸 때만은 아니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