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박응격/‘태평농법’

  • 입력 2001년 11월 25일 18시 25분


경남 하동군에 거주하는 이영문씨(47)는 30년 가까이 농촌을 지켜온 농사꾼이다. 그는 옛 조상들의 환경 친화적인 농사법을 복원하는데 힘을 기울여 왔다. 스스로 ‘태평농법’이라 이름짓고, 요즘 이를 보급하는 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태평농법이란 생태계의 천적(天敵)관계를 이용해 농약을 치지 않고도 미생물과 벌레를 이용해 해충을 내쫓으며, 비료를 쓰지 않고 땅을 갈아엎지도 않는 농사기술을 말한다. 이 농법은 여러 해에 걸쳐서 국립 경상대 농과대 연구팀에 의하여 과학성이 입증되었다.

▷예를 들면 무궁화와 버드나무를 논밭 주변에 많이 심으면 해충을 몰아내고 어느 정도 무농약 농사를 실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무궁화는 나라의 꽃으로 태극기와 함께 애국의 표상이다. 그러나 무궁화는 일제강점기 수난을 겪은 이래, 해방 이후 지금까지도 나라꽃다운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버드나무 또한 평야지대를 지나는 국도 변에 흔했던 것이지만 종적을 감추고 플라타너스 같은 수종으로 교체된 지 오래이다.

▷무궁화와 버드나무는 벼멸구 이화명충 등 해충을 잡아먹는 무당벌레와 같은 천적들에게 서식처를 제공해 준다. 때문에 옛 사람들은 개울이나 논밭 주변에 무궁화와 버드나무를 많이 심어 왔던 것이다. 무궁화와 버드나무가 해충 천적의 좋은 서식처가 되는 것은 오묘한 자연의 질서이기도 하다. 그 무당벌레의 유충은 바로 버드나무 잎을 먹고 자라는 게 아닌가.

▷무당벌레가 성충이 되려면 식물만 먹는 게 아니다. 무궁화 잎에 진딧물이 왕성하게 활동할 때, 무당벌레가 무궁화로 옮아가서 진딧물을 포식하면서 성충으로 자란다. 그 후 논밭에 있는 각종 해충을 모조리 잡아먹는다. 또한 농약을 살포하지 않음으로써 메뚜기 거미 등이 가세하여 논밭에 있는 해충을 사라지게 한다. 무당벌레와 무궁화, 버드나무는 이렇게 천생 연분인 것이다. 농약은 식탁의 먹을거리 걱정을 안겨 준다. 화학비료는 땅을 척박하게 한다. 이런 걱정 고민을 조상들의 지혜, 태평농법이 해결해 줄 수 있다면 얼마나 다행인가.

박응격 객원논설위원

(한양대 교수·행정학)

parkek@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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