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醫協지침 사회적 합의가 우선

  • 입력 2001년 11월 16일 18시 42분


의료행위의 목적이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라는 데에는 이론이 있을 수 없다. 이에 반하는 의료행위가 정당화되려면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런 면에서 대한의사협회의 의사윤리지침 선포는 성급했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윤리지침에서 문제되는 대목은 회생이 불가능한 환자에 대한 치료 중단과 낙태, 뇌사에 관한 규정 등 크게 세 가지다. 윤리지침은 ‘회생 가능성이 없는 환자는 가족 등 대리인이 생명 유지치료 중단이나 퇴원을 문서로 요구할 경우 의사가 수용할 수 있다’고 명기해 소극적 안락사를 사실상 인정했다. 또 법이 허용하는 예외적인 경우가 아니더라도 낙태를 인정했고 심장사뿐만 아니라 뇌사도 죽음의 기준으로 삼았다.

현대 의학으로 살릴 수 없는 환자의 생명 연장이 환자나 가족에게 고통을 강요할 뿐이라는 의협의 입장에도 일리는 있다. 또 낙태 시술은 한 해에 150만 건이 넘을 정도로 만연되어 있고 뇌사 인정도 무의미한 진료를 줄여야 한다는 뜻으로 보인다.

그러나 분명한 점은 이 세 가지가 모두 실정법에 저촉된다는 사실이다. 3년 전 아내의 요청에 따라 환자를 퇴원시켜 사망에 이르게 한 의사에게 법원은 살인죄를 선고했다. 또 모자보건법은 5가지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으며 뇌사는 장기이식이 목적일 때 한해 인정될 뿐이다.

윤리지침은 생명 경시 풍조를 부채질하리라는 점에서도 우려를 자아낸다. 소극적 안락사는 현실적으로 극빈자 등 사회적 약자가 희생될 가능성이 크다. 극단적 예이기는 하나 소생할 수 있는 환자가 경제적 부담을 두려워하는 가족 때문에 치료받지 못하고 사망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또 낙태를 인정하면 성 풍속이 문란해지고 이에 따라 낙태가 더욱 성행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지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말이다.

의협은 ‘윤리지침은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며 강제력은 없다’고 밝혔다. 그렇다고 해도 의사들은 이 지침을 윤리적 잣대로 삼을 수밖에 없을 것이며 이럴 경우 어떤 사회적 혼란이 닥칠지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의협이 올 4월 지침을 마련해 놓고 그동안 발표를 보류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 아니었던가.

문제의 규정들은 외국에서도 아직 논란이 계속될 만큼 민감한 사안들이다. 의협의 주장대로 현행법이 현실과 동떨어져 있다고 해도 그것이 법에 배치되는 지침을 정당화시킬 수는 없다. 의협은 지침을 강행하기보다 지금이라도 각계의 의견을 수렴해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절차를 밟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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