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문홍/‘무식한 대학생론’

  • 입력 2001년 11월 16일 18시 07분


요즘 일본에선 도쿄대 비판이 한창이다. 고교시절 생물과목도 배우지 않은 학생이 의학부에 들어가는가 하면 뉴턴역학을 모르는 기계공학과 학생도 많다는 것이다. 일본 최고 엘리트의 산실인 도쿄대 학생들의 학력저하를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올 봄 서울대가 신입생을 상대로 치른 ‘대학 교양국어’ 시험에서 ‘民族(민족)’ ‘國家(국가)’ ‘韓國(한국)’ 등 기초 한자도 제대로 못 읽는 학생이 수두룩했다는 보도가 있었던 데 비춰보면 ‘무식한 도쿄대생’ 얘기가 남의 것으로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일본에서 이 논쟁을 이끌고 있는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라는 인물이 참 흥미롭다.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연구’ ‘일본 공산당 연구’에서 뇌사(腦死) 원숭이학 임사(臨死)체험에 이르기까지 온갖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가도 놀랄 정도로 수준 높은 책을 써온 일본 최고의 논픽션 저널리스트. 글을 쓸 때 관련 자료를 3∼4m 높이로 쌓아 놓고 모조리 읽는다는 엄청난 독서광, 넘치는 책을 주체하지 못해 전용서재 건물까지 지은 인물…. 그런 사람의 눈에는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식하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 다치바나씨가 자신의 독특한 독서론을 소개한 책(국내에 번역판이 나와 있다)에는 비서를 채용할 때의 에피소드가 나온다. 신문에 광고를 내자 다양한 학력과 나이의 사람들이 500여명이나 응모했단다. 고민에 빠진 다치바나씨, 시험을 보기로 하고 문제를 냈다. ‘역대 대장상의 이름을 생각나는 대로 적으시오.’ ‘(국적 시대 분야를 불문하고) 과학자의 이름을 생각나는 대로 적으시오.’ 그가 낸 문제를 보면 적어도 ‘전문가급’ 비서를 원한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사실 지식이나 교양 수준이 갈수록 떨어진다는 건 대학생들만의 얘기는 아니다. 서양사 2500여년 동안 축적된 교양을 한 권에 담아냈다는 책이 요즘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있다는 사실도 역설적으로 우리 시대의 ‘무식함’을 말해주고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전문화를 핑계삼아 세상이 무식해져 가면 갈수록 오히려 균형 잡힌 교양인의 가치는 빛을 더해 가리라는 것도 틀림없는 사실이다.

<송문홍논설위원>songm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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