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채청/법조인 대선주자들에게

  • 입력 2001년 11월 11일 18시 51분


이달 25일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임기의 4분의 3을 채운다. 김 대통령의 임기를 하루로 환산하면 지금은 오후 6시가 안 된 시점이나, 정치권은 이미 대선 철로 접어든 느낌이다.

새 세기 첫 대선인 내년 16대 대선은 국민이 직접 대통령을 뽑는 선거로는 건국 이후 딱 열 번째가 된다. 이러한 연대기적 의미 외에도 내년 대선은 여러 가지 새로운 측면이 있다.

우선 선거에 의한 정권교체 경험을 가지고 치르는 최초의 대선이라는 점에서, 공무원 사회의 동요가 어느 때보다 우려된다. 대통령이 일찍이 여당 총재직을 버리고, 소여(小與) 후보와 거야(巨野) 후보의 대결 가능성이 큰 것도 과거와는 다른 점이다.

현재의 예비주자 면면들로 볼 때 내년 대선은 영호남 유권자에게 후보의 출신지역이 문제가 되지 않는 선거가 될 가능성도 있다. 대선(직선) 무대에서 양김(DJ와 YS)의 모습을 볼 수 없다는 점도 유권자들에게는 31년 만에 맞는 새로운 환경이 될 것이다.

독립투사-군인-민주화투사로 이어지는 한국 대통령의 계보가 법조인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작지 않다.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와 민주당 이인제 노무현 김중권 박상천 상임고문은 물론 이한동 총리도 법조인 출신이다. 최근 정치권의 혼란은 정치 환경과 주역이 바뀌는 과정에서의 진통으로 볼 수도 있다.

외국에야 법조인 출신 정치지도자가 흔하지만, 우리 정치사에선 이렇다 할 법조인 출신 정치지도자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법조인 출신 대선후보가 100만표 이상 득표를 한 것은 92년 대선에서 4위를 한 박찬종씨가 처음이었다.

법조인 출신 정치지도자의 무더기 출현은 97년 신한국당 대선후보 경선이 계기가 됐다. 짧은 시간에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 이들의 등장은 민주화 진전과 관료집단의 성장에 따른 하나의 시대현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민주화 지도자로서의 DJ와 YS가 오랜 독재와 권위주의의 토양에서 배양된 정치인인 것처럼, 법조인 출신 정치지도자의 부상 또한 역설적으로 우리 사회의 ‘법의 위기’를 반영하는 게 아닐까.

공교롭게도 검찰권이 적나라하게 정치권의 외풍에 노출되기 시작한 것은 97년 대선 때였다. 당시 검찰은 ‘DJ 비자금 의혹 사건’ 수사 여부 때문에 극심한 외우내환을 겪었고, 검찰의 ‘수난’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법조인은 선망받는 직업이다. 직업적으로 정의(正義·법의 이념)를 외치면서, 합법적으로 빵(법학을 ‘빵의 학문’으로 부른 사람도 있음)도 충분히 얻을 수 있다는 점이 선망받는 요인 중 하나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법조인에 대한 이미지가 좋다고만은 할 수 없다. ‘좋은 법률가는 나쁜 이웃’이라는 영국 속담처럼, 원고측 대리인이 되느냐 피고측 대리인이 되느냐 또는 심판자가 되느냐 변호인이 되느냐에 따라 논리가 달라질 수 있는 이들의 ‘법률 기술’은 때로 야유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우리 사회에서 ‘법대로’란 말도 이중적 의미를 지닌다. 폭력과 무질서를 제어하기 위한 ‘법대로’는 좋은 의미이나, 상식과 대화로도 풀 수 있는 일을 ‘법대로 하자’고 하는 것은 억지일 경우가 많다. 법조인 출신 정치지도자 시대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교차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어쨌든 내년 대선에 이르는 과정만은 제발 ‘법대로’ 공정하게 진행됐으면 한다. 그것이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는 첫 걸음이다.

임채청<정치부장>ccl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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