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보건행정 '숫자놀이' 하는가

  • 입력 2001년 11월 6일 18시 54분


국가 정책이 제대로 수행되려면 국민의 신뢰가 바탕에 깔려야 한다. 어떤 정책이라도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국민의 동의를 얻을 수 없고 결국 실패하기 마련이다.

보건복지부는 당초 내년 직장인 건강보험료가 9∼11% 오른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 인상폭은 20%가 넘는 것으로 밝혀졌다. 복지부측은 뒤늦게 ‘올해 말로 끝나는 건보료 경감 혜택까지 감안할 경우 인상폭은 높아진다’고 시인했다. 지난해부터 두 차례에 걸쳐 직장가입자들에게 건보료를 깎아준 경감조치가 올해 말로 마감돼 추가인상요인이 생기지만 이는 예정되어 있던 것이기에 인상률에 포함시키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이는 변명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 한 해 동안 건보료가 50% 이상 오른 판에 다시 대폭 인상한다고 하면 비난이 쏟아질 것 같으니까 우선 여론의 화살을 피하고 보자는 ‘숫자놀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소득의 3.4%만 내는 우리의 건보료가 유럽의 10∼20%, 일본이나 대만의 10%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사실이다. 여기에 노인 인구가 늘고 의료서비스도 점점 고급화되는 추세여서 건보료는 앞으로 크게 오를 수밖에 없다. 그럴수록 이런 문제점을 솔직히 털어놓고 국민을 설득해 동의를 구하는 것이 정부의 바른 자세다. 그러나 의료개혁 정책과 관련해 국민은 늘 뒤통수만 맞아왔다. 의료보험을 통합하면 보험료가 낮아지고 국고지원이 줄며 형평성 있게 보험료를 부과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 중 한 가지도 지켜지지 않았다. 또 의약품의 오남용을 방지한다는 명분으로 의약분업을 시작했지만 약제비는 오히려 늘지 않았는가.

이번 일만 해도 그렇다. 인상요인을 모두 감안해 처음부터 20% 이상 오른다고 밝혔어야 옳았다. 어차피 내년이 되면 국민에게 돌아올 부담이다. 그때 가서 발표와는 달리 크게 오른 건보료를 보고 터질 국민의 분노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이번 일은 근본적으로 국민과 정부간 ‘신뢰의 문제’다. 이런 일이 쌓여 보건정책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증폭될 경우 보건행정은 더욱 꼬이고 어려워질 수 있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땜질식이 아닌 근본적인 건강보험 재정안정대책을 내놓아 국민의 신뢰를 얻고 나서 필요하다면 고통분담을 요청해야 한다.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발상에서 군색한 해명으로 눈앞의 위기만을 넘기려는 자세는 정부에 대한 불신만 키울 뿐이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