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한승주/東아시아 협력-평화 길연다

  • 입력 2001년 11월 5일 18시 35분


브루나이의 수도에서 제5차 ‘동남아 국가연합(ASEAN)+한중일 3개국 정상회의’가 열렸다. 이들 13개국의 제1차 정상회의가 열린 1997년은 공교롭게도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이 금융 위기에 직면해 있던 때였다. 그 후 동아시아 각국은 경제 위기 극복에 전념하느라 매년 정상회의는 열었지만 지역 협력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형편이 되지 못했다.

▼민간포럼도 창설추진▼

그러나 이번의 ‘ASEAN+한중일 정상회의’는 동아시아 협력체 형성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김대중 대통령은 브루나이 정상회의에서 ‘동아시아 공동체’ 건설을 목표로 하는 동아시아 비전그룹(EAVG) 보고서 내용의 채택을 제의함으로써 우리나라가 동아시아 지역협력 증진에 중심적 역할을 맡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EAVG는 김 대통령이 98년 제안, 13개 회원국의 학자 등 26명으로 구성된 민간 차원의 기구이며 필자도 이 그룹의 일원으로서 보고서 작성에 참여했다.

EAVG는 이 보고서에서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안보, 사회, 문화, 교육 등 여러 분야에서의 협력을 목적으로 하는 ‘동아시아 공동체(East Asian Community)’ 구성을 제안했다. 그러한 공동체 창설에는 경제 분야가 견인차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경제 협력을 위해 EAVG는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EAFTA), 통화기금(EAMF), 투자지역(EAIA)의 설치를 제안했으며 그중 EAFTA는 동아시아에서 세계무역기구(WTO)나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보다 앞서 나가는 스케줄의 무역 자유화를 상정하고 있다. EAVG 보고서는 또 향후 ‘ASEAN+한중일 정상회의’를 ‘동아시아 정상회의’로 발전시키는 것을 제의했다. 이는 앞으로 ASEAN이 주도해온 동아시아 13개국 정상회의를 동북아에서도 개최할 수 있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보고서는 동시에 민관으로 구성된 ‘동아시아포럼’을 설치하는 제안도 포함하고 있다.

동아시아 협력체 구성 움직임에 대해 회의를 표시하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과 같은 세계화시대에 또 하나의 지역 공동체가 필요하겠느냐는 것이다. 10여년 전 말레이시아의 마하티르 모하마드 총리가 ‘동아시아 경제협의체(EAEC)’를 주창했을 때, 미국 캐나다 호주 등은 그것이 배타적인 기구가 될 수 있으며 APEC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이유로 반대한 적이 있다.

그러나 동아시아가 지역 협력을 강화하고 공동체를 지향하겠다는 것은 ‘유럽연합(EU)’이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같은 다른 공동체에 대응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동아시아 공동체를 구성하는 목적은 크게 다섯 가지로 꼽을 수 있다. 첫째, 동아시아 국가 간의 갈등을 해소하고 평화를 증진하는 것이다. 특히 중국과 일본의 협력과 균형이 필요하다. 예컨대 유럽공동체(EC)나 ASEAN의 가장 큰 성과 중의 하나는 내부적 협력과 평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둘째, 교역 금융 경제발전 등에 있어 지역내의 협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지역의 경제공동체를 지향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셋째, 경제뿐만 아니라 환경, 교육, 자원 등의 분야에서 협력하고 효율적이고 민주적인 통치체제를 만드는데 같이 노력하자는 것이다. 넷째, 동아시아의 양 축을 이루고 있는 동남아시아와 동북아시아의 협력과 결속을 도모하는 것이다. 끝으로 상호간의 교류와 협력을 통해 동아시아의 유대감과 정체성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외교입지 넓힐 기회로▼

이러한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우리나라는 특유의 중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 한국은 동북아시아에서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 그리고 동아시아 전체로 볼 때는 동북아시아의 강대국들과 동남아시아의 중소국가들 간의 교량이 될 수 있다. 한편 미국을 비롯한 아태지역의 다른 APEC 국가들의 입장에서도 한국이 앞장설 때 동아시아 공동체에 대한 의구심을 어느 정도 접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이 주요국으로 참여하는 지역공동체의 탄생은 우리의 외교적 입지를 넓혀 줄 뿐만 아니라 북한과의 관계에도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C의 존재가 동서독 관계에 윤활유 역할을 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한승주(고려대 교수·정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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