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부실 외교부’ 대수술 필요하다

  • 입력 2001년 11월 4일 19시 28분


외교통상부가 한국인 처형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책임을 중국측에 전가하려다 거짓말임이 드러난 사건은 실무 책임자 몇 명에 대한 문책만으로 끝날 사안이 아니다.

그 보다는 제2, 제3의 ‘나라 망신’ 외교를 방지하기 위해서 허점 투성이인 외교부의 문제점을 점검하고 필요한 ‘수술’을 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외교부는 올 들어서만 탄도탄요격미사일(ABM)협정에 대해 우방국인 미국을 제쳐놓고 러시아 편을 드는 실수를 했으며, 남쿠릴열도 꽁치조업 문제는 일본과 러시아의 협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해 뒤늦게 대체어장을 구걸하는 뒷북 외교를 하고 있다. 이어 신모씨가 중국에서 사형당한 사실이 한 달이 지나서야 확인되자 우왕좌왕하다 주중대사관과 외교부가 일제히 거짓말을 하는 대 실수를 했으니 외교부가 현재는 물론 앞으로 더욱 미묘하고 복잡하게 전개될 각종 외교현안을 제대로 풀어나갈 능력을 갖추었는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외교부는 1년도 안돼 대미 대러 대일 대중외교에서 모조리 국익을 손상시키는 실수를 저질렀다. 이것이 현정부가 강조하는 4강외교의 실체란 말인가.

신씨의 사형은 공직자사회에서 엘리트라고 자부하는 외무공무원들 가운데 상당수가 자질과 공무원으로서의 소명의식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계기도 됐다. 중국 교민사회에서는 대사관 직원들이 교민들의 고정(苦情)을 듣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도움을 주는데는 소극적이면서 골프 등 여흥 챙기기에는 적극적이라거나, 할 일은 많은 반면 ‘생기는’ 것은 없는 영사 업무를 기피하고 출세의 기회를 잡기 위해 정무직 등에만 눈독을 들인다는 비난이 많다. 세계 곳곳의 교민사회에서 한국 외교관들의 대민 봉사가 선진국 외교관에 크게 못 미친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외교부에는 고위급이 책임을 아래로 미루려는 한심한 기류가 감돌고 있다고 한다. 신씨 사건이 국가의 위신이 걸린 중요 사안임에도 외교부 장차관은 간 곳이 없고 기자회견을 갖고 해명한 사람은 재외국민영사국장이었다. 최고책임자인 한승수(韓昇洙) 장관은 유엔총회의장직을 수행하느라 뉴욕에 머물며 가끔 서울을 ‘방문’하고 있다. 우리는 이 같은 난맥상이 정권 말기 공직사회의 기강 해이가 한 원인이며 외교부만의 현상이 아닐 것이라고 판단한다. 정부는 이번 사건을 교훈 삼아 공직사회의 기강해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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