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행동하는 지성 '앙드레 말로-소설로 쓴 평전'

  • 입력 2001년 11월 2일 18시 47분


◇ 앙드레 말로-소설로 쓴 평전/레미 코페르 지음/356쪽 1만2000원 이룸

3일로 탄생 100주년을 맞은 앙드레 말로(1901∼1976)의 인생 동반자였던 ‘귀여운 여인’ 클라라는 남편에게 인사하는 것조차도 어려웠다고 말한 바 있다. 실제로 젊은 말로는 “나에게만 중요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라고 자주 되뇌이곤 하였다. 이는 한 개인의 껍질을 벗겨낸다고 인간의 본성을 만나는 것이 아님을 믿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벗기기 싫은 개인사가 있기 때문이었을까.

어쨌든지 그는 체질적으로 추억이나 마음 속 깊이 간직한 비밀보다는 평생 굵직한 모험을 찾아 헤매었다. 캄보디아에서는 앙코르 사원의 약탈자, 사이공에서는 혁명가, 스페인 내란에서는 투사였으며 2차 세계대전 중에는 레지스탕스 대원에다 드골주의자였던 말로는 자신의 삶이 대서사시가 되기를 바랐다.

우리는 작가이자 기자이며 역사가인 레미 코페르의 이 책에서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불꽃같은 그의 삶의 여정을 만날 수 있다. 그러면 왜 한낱 댄디였던 말로가 끊임없이 자신의 삶을 불꽃처럼 태울 수 있는 모험을 찾아 나선 것인가? 이 질문의 대답은 그가 어느날 줄리앙 그린에게 던진 말, “열 여덟에서 스무 살 사이일 때는 인생이란 마치 시장과도 같습니다. 거기서 사람들은 돈으로 가치를 사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사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사지 않습니다”(31쪽)에서 찾을 수 있다.

이렇게 그가 찾아다닌 모험은 소설이 되고 또 소설은 그의 삶의 모델이 된다. 인도차이나에서의 모험은 ‘정복자’ ‘왕도’ ‘인간의 조건’ 등의 소설로, 스페인 내란 참전 경험은 ‘희망’으로, 레지스탕스 대원으로서의 활동은 ‘알텐부르그의 호두나무’라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하나의 작품이 출판될 때마다 그는 니체적 영웅이나 형제애의 화신쯤으로 여겨졌고, 작품의 주인공을 닮기 위하여 그는 다시 기이한 모험의 길로 나섰다. 이것이 여의치 않을 때에는 자신의 삶에 대한 서사시를 스스로 창조하기도 하였다. 이렇게 그는 결코 고갈되지 않는 정력으로, 20대에 자신에게 다짐했던 자기 자신의 상(像)을 조각하였다.

레미 코페르의 ‘앙드레 말로, 소설로 쓴 평전’의 원제는 ‘한 야바위꾼의 소설’이다. 코페르는 말로가 스스로 창조한 ‘행동하는 양심’이라는 실존적 앙가주망(engagement·참여)의 신화를 한거풀 벗겨내고 진정한 ‘인간 말로’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코페르는 신화의 이면에 있는 그의 인간미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상당히 객관적으로 살아있는 말로을 그리려고 애썼다. 예를 들어 말로가 캄보디아 사원 약탈로 유죄판결을 받은 후, 프랑스 작가들의 구명 운동으로 프랑스에 돌아왔을 때 말로에 대한 소문은 그를 정의의 투사로 만들었다. 이것을 미리 예감한 그는 사람들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함으로써 신비가 신비를 강화시키도록 하였다. 이 책의 첫머리에 인용된 말로의 ‘반회고록’의 고양이처럼, 말로도 평생 “말라르메 씨 댁의 고양이인 척”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작품에 개입하여 자신의 도덕적 잣대로 말로를 질타하기보다는 그냥 있는 그대로 인간적 면모를 보여주는 것으로 만족한다. 비록 보헤미안 스타일의 낭만적 참여가 때로는 자신의 신화를 창조하기 위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평생 역사의 현장을 쫓아다니며 말에 자신의 행동을 일치시키려고 했던 그의 열정은 오늘날에도 신선하고 아름답게 다가온다.

이 책의 매력은, 우선 저자가 서문에서 밝힌 바처럼 말로의 인간미를 부각시키면서 그를 너무 진지하게도 또 너무 가볍게도 다루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실화를 소설처럼 보이도록 만든 점이다.

특히 젊은 시절 별났던 말로가 노년에 죽음을 저항없이 맞이하는 ‘고아’라는 마지막 장은, 그렇게도 인간의 조건에 도전했던 그가 죽음 앞에서 인간의 조건을 몸소 보여주는 것이어서 슬픈 감동을 자아낸다. 그리고 자칫 짜증스러울 수 있는 역사적 배경이나 말로가 만났던 인물 등에 대한 방대한 자료가 작품 속에 잘 녹아있음도 특기할 만 하다. 장진영 옮김, 원제 ‘Le Roman d’un flambeur’(2000)

이경해(동덕여자대 교수·불문학)

◇ 탄생 100주년 계기 평전 봇물

3일은 앙드레 말로 탄생 100주년이 되는날. 프랑스에서는 올해에만 15권의 평전이 출간됐다.

올해 출간된 책의 특징이라면 ‘국민적 영웅’이나 ‘위대한 작가’보다는 ‘명암이 엇갈리는 인간’ 말로에 주목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동안 말로의 전기는 많지 않았다. 말로 자신의 글과 말에서 보이는 과장과 희극성, 불분명한 입장 표명 등으로 ‘인간’ 말로에 대한 이해가 쉽지 않은 탓이다.

프랑스에서는 메리 코페의 ‘앙드레 말로-소설로 쓴 평전’과 함께 저널리스트인 올리비에 토드의 ‘앙드레 말로, 일생(Andre Malraux,une vie)’(갈리마르)이 주목을 받았다. 토드는 미공개 공문서 등 사료를 샅샅이 뒤져서 말로의 허세과 거짓을 드러낸다. 말로가 신경질환을 앓았으며, 대학졸업 이력을 속였고, 레지스탕스 지하운동 지휘자를 사칭했다는게 토드의 주장이다.

앙리 고다르 교수는 ‘앙드레 말로의 우정(L’amitie Andre Malraux)’(갈리마르)을 통해 말로의 영웅적인 인간상을 부각시켜 좋은 대조를 이룬다.

막스 케리앵의 ‘새로운 장관상을 정립한 말로(Malraux, l’antiministre fondateur)’(랭토)는 프랑스 문화를 세계화시켰던 문화성 장관시절의 행적을 관련자의 증언으로 생생하게 재생시킨 평전이다.

국내에서는 말로의 문학과 생애를 다룬 연구서를 찾기 어렵다. 다만 포스트모더니스트인 장 프랑수아 리오타르가 96년 발표한 ‘말로(Signx Malraux)’(책세상·2001년)가 주목할 만하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 앙드레 말로(1901.113~1976.11.23)

파리출생.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정치가. '서구의 유혹'(1926)을 시작으로 '인간의 조건(1933)등의 소설 발표. 전체주의가 대두하자 앙드레 지드 등과 반파시즘 운동에 참가. 1936년에 스페인 내전이 일어나자 공화파 의용군에 참전.

제2차 세계대전때에는 항독 운동에 나서 포로가 되기도 함. 1959년 드골의 신임을 받아 문화성 장관으로 임명됐으며 정치활동중에서도 수많은 미술론 발표. 1961년 두 아들을 자동차 사고로 잃음. 1969년에 드골이 은퇴하자 함께 은퇴해 저술활동

◆ 책을 보내드립니다

앙드레 말로는 대표적인 현실 참여 지식인으로 꼽힌다. 장세스의 공산당 탄압을 그린 앙드레 말로의 대표작으로 1933년 공쿠르상을 수상한 작품은?

(7일까지 정답을 팩시밀리 02-2020-1279번이나 e메일 book@donga.com으로 보내주시면 20명을 추첨해 ‘앙드레 말로-소설로 쓴 평전’을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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