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비극뒤에 도사린 또다른 얼굴 '불량국가'

  • 입력 2001년 10월 19일 18시 49분


불량국가/ 노암 촘스키 지음 장영준 옮김/ 370쪽 1만2800원 두레

“헛된 일인 줄 알면서도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

변형생성문법의 창시자이자 이 시대의 ‘행동하는 양심’으로 평가되는 노암 촘스키(사진) 미국 MIT 교수. 공자가 ‘논어’에서 묘사한 이 군자의 상을 빌어와 그가 제시하는 이 시대의 이상적 인간상은 바로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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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칠 줄도 모르는 이 73세의 지식인에게 상대가 얼마나 강하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미국내의 가장 강력한 미국 비판자 중 한 사람인 그에게 중요한 것은 ‘인권’과 ‘정의’에 어긋나는 것을 파헤쳐 고발하며 이를 바로잡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뉴욕타임스는 그를 ‘살아 있는 가장 중요한 지식인’이라고 극찬했다.

유태인으로 초창기 이스라엘 건국에 참여했으나 미국의 이스라엘 정책에 반대했고 이슬람인에 대한 서구의 부당한 압력을 격렬히 비판하는 사람, 나치에 반대하면서도 나치 협력자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싸우는 사람.

그는 반미주의자도, 사회주의자도, 혁명가도 아니다. 그에게는 ‘인권’과 ‘정의’라는, 아주 단순하면서도 거대한 원칙만이 존재한다.

국내에 이미 그의 저서가 여러 권 출간돼 있지만, 미국이 이른바 ‘테러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이 시점에 번역 출간된 이 책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작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됐던 이 책은 미국이 테러의 표적이 된 이유를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미국은 이라크, 북한, 쿠바 등을 ‘불량국가’로 분류하지만, 오히려 국제질서 위에 군림하며 국제 규범을 무시하는 미국이야말로 국제 사회의 ‘불량스런 국가’라는 것이다.

1944년 시작된 민주주의의 실험을 10년만에 끝맺고 야만과 고문의 시대를 맞은 과테말라, 1975년 이후 80만 명의 인구 중 20만 명이 살해된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1990년대 들어 매년 자기집에서 쫓겨나는 피난민이 30만명에 이르고 수많은 학살이 자행되는 콜롬비아…. 촘스키는 이런 20세기의 무지막지한 만행 뒤에 항상 미국이라는 ‘불량국가’가 있음을 증명하는 근거를 하나하나 제시한다.

그는 뉴욕타임스 파이낸셜타임스 보스턴글로브 가디언위클리 등 세계적 권위지를 비롯해 미국전략사령부 보고서, 미국 국가안보회의 비망록, 미국국제법학회 소식지, 유엔의 각종 보고서, 사건 관련자들의 회고록 등 방대한 자료를 통해 유엔의 결의마저 묵살하고 세계를 마구 주물러대는 강대국의 모습을 그려낸다.

방대한 자료인용 때문에 쉽게 읽히지는 않지만 독자에게 저자의 주장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 엄청한 자료들을 하나하나 들이대고 미국의 세계지배와 그로 인해 유린되는 인권과 정의의 현장을 보여주며 독자의 판단과 행동을 기다린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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