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하성규/신도시 안전 다질 기회로

  • 입력 2001년 10월 16일 18시 52분


1989년 11월 26일 경기 분당 신도시 모델하우스가 일반에 공개되는 날 수도권 주민들은 주택 전쟁을 방불케 했다. 신도시 분당으로 가는 기나긴 행렬이 마치 전쟁 직후 뛰쳐나온 피란민 행렬과 다를 바 없었다는 신문기사가 나올 지경이었다.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걸친 신도시 아파트에 대한 관심도를 말해 주는 장면이었고 한국의 주택문제를 단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졸속 후유증…잇달은 소송▼

당시 정부는 수도권의 시급한 주택문제와 부동산 투기를 단기간에 해결하려는 목적으로 신도시를 건설했다. 계획 과정이 전격적으로 진행됐기 때문에 주민 의견 수렴과 전문가 집단의 계획에 대한 평가가 소홀하게 다뤄진 것은 당연했다. 신도시를 건설하는 기간도 4∼5년밖에 되지 않아 처음부터 장기적 인간 정주계획이 아닌 단기간 주택공급 확대 대책의 일환이었음을 알 수 있다.

1990년대 초반 수도권 5개 신도시 건설을 통해 만성적인 주택 초과 수요를 어느 정도 해결하고 그 결과로 주택가격 안정을 도모할 수 있었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주택가격 상승은 매우 낮은 상태를 유지했고, 수도권의 주택가격 안정은 신도시 건설을 통한 대량 주택공급 덕분이라고 해도 전혀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수도권의 신도시 건설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부작용과 문제점을 가져왔다. 단기간에 엄청난 양의 주택을 공급하는데 따른 주택 자재 부족과 부실 시공, 임금 상승은 경제 전반에 부정적 파급효과를 초래했을 뿐만 아니라 신도시의 전반적인 부실화를 가져왔다.

당시 부실 시공에 대한 우려는 입주 10년째를 맞은 올해 드디어 5개 신도시의 아파트들에서 심각한 후유증으로 나타나고 있다. 신도시 아파트에는 지금 하자보수 보증금 청구소송이 잇따르고 있고 피해가 심한 아파트 주민들이 제기하는 손해배상 청구소송이 봇물을 이루고있다. 시공사와 타협한 아파트도 있지만 일부 주민은 재판을 통해 승소했거나 아직도 소송이 진행중인 곳이 적지 않다고 한다.

1960년대 이후 40여년 동안 한국 사회를 지탱해온 패러다임은 성장지상주의였다. 이런 성장지상주의가 단기간에 이룬 집약적 발전의 뿌리가 된 것은 분명하지만 후유증을 낳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신도시 건설은 단기간에 주택가격을 안정시켰지만 현재 신도시에 살고 있는 주민들에게 물적 피해와 정신적 불안이라는 후유증을 남겼다. 한국이 자랑하는 압축 성장과 돌격 성장이 가져온 필연적 결과인 셈이다. 사실 신도시 주민만 불안해하고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는 국민 모두가 불안 속에 살아가고 있음을 웅변하고 증명했다.

신도시 아파트 부실의 첫번째 책임은 시공사에 있다. 그러나 단순히 시공사의 잘못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감독 관청을 포함해 한국 사회의 총체적 부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건설업 전반에 만연한 부정과 비리의 연결 고리는 부정할 수 없는 한국 사회의 경험이요 현실이 아닌가. 억울한 사람은 정상적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아 입주한 주민들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시민 모두가 피해자라고 할 수 있다.

신도시 주민 중에는 부실 상태가 공개되면 집 값이 떨어진다고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러나 부실을 숨기면서 집 값을 제대로 받을 것이라고 기대하면 오산이다. 철저히 보수하고 완벽하게 보강작업을 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아파트를 만들어야 한다.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도 잘못된 것은 시정하고 근원적인 해결 방안을 찾는 것이 순리이다.

▼시민 모두가 감시-관리해야▼

신도시 건설을 주창했던 위대한 도시계획가 아벤저 하워드는 신도시야말로 기존 도시의 공간구조와 물리적 특성을 복사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보다 인간적이고 생태적이며 자족적인 정주공간이 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작금의 한국 사회는 신도시 유토피아를 강조할 단계는 아니다. 모든 주택이 안전하게 지어지는 곳이 신도시라는 인식을 국민 모두에게 각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수도권의 판교와 화성 등에도 신도시를 건설한다고 한다. 다시는 이 땅에 부실덩어리로 취급되는 신도시가 들어서지 못하도록 시민 모두가 감시자와 관리자가 돼야 할 것이다.

하성규(중앙대 사회개발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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