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법관 개혁목소리 왜 나왔나

  • 입력 2001년 10월 16일 18시 36분


사법부는 헌법과 법률, 그리고 관습에 따라 우리 사회의 분쟁과 범죄를 심판하는 조직의 성격상 다소간 보수적 경향으로 흐르게 된다. 이런 조직에서 내부 비판의 목소리를 내다가는 자칫 튀는 행동 혹은 이단으로 취급받기 쉽기 때문에 여간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게 아니다.

서울지법 문흥수(文興洙) 부장판사가 제의한 ‘법의 지배 확립을 위한 사법부 독립과 법원 민주화를 생각하는 법관들의 사이버 공동회의’에 법관 33명이 동의를 하고 나섰다. 전국 법관 1700여명 중 일부만이 참여한 작은 모임이라고 하지만 그들이 전달하는 메시지에는 숫자를 뛰어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본다.

사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이다. 사법부의 법관들이 외부의 권력과 금력, 그리고 부당한 내부의 압력으로부터 독립하지 못하면 법의 지배의 최종 수호자로서 굳건히 서기 어렵다.

문 부장판사는 99년 변호사와 연루된 일부 법관들의 독직 사건 때 과감한 자정 의견을 개진하는 등 사법권 독립에 관한 소신을 일관되게 판결과 글, 때로는 행동으로 표시해 왔다. 그가 작성한 사이버 공동회의 발족 취지문에서 사법부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것에 대해 30여명의 법관들이 동참한 것은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최근 부정부패가 도를 넘어 온 국민이 사법 위기의 시대를 맞이한 것은 법관들이 책무를 다하지 않은 책임도 있다는 발족 취지문의 지적은 전적으로 옳다. 그는 특히 형사재판의 양형(量刑)이 변호사와 연관돼 국민의 공감을 얻지 못할 정도로 온정주의로 흐르는 경향이 있음을 고백했다. 사회의 지탄을 받은 권력형 경제 범죄들이 여론이 잠잠해질 만하면 법원에 넘어가 온정주의 판결을 받음으로써 이 사회의 부패를 온존시킨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법관들의 신분을 보장하는 인사시스템이 확립돼야만 법관들이 양심에 따라 재판에 전념할 수 있다는 문 부장판사의 견해도 대부분의 법관이 공감하는 것이다. 특히 ‘법관들도 자신의 가정과 장래를 생각하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술회는 주목된다. 법관들이 현재의 인사시스템 하에서는 승진 또는 보직 인사에 영향을 받아 재판의 독립성에 완벽을 기하지 못했다는 자성으로 풀이되기 때문이다.

실개천의 자정 노력이 하나 둘 모이면 본류의 수질과 흐름을 바꾸어 놓는다. 양심 있는 법관들이 내부의 정체에 대해 자성의 노력을 기울일 때 우리 사회에서 엄정한 법의 지배가 이루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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