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방한 반대 이유 아는가

  • 입력 2001년 10월 13일 18시 55분


15일 방한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서대문독립공원을 들러 일제 식민지배를 사과하고, 국립묘지도 참배할 것이라는 보도다. 8일 그가 중국 방문시 베이징 근교의 항일 유적지 루거우차오(盧溝橋)를 들른 것과 닮은 스케줄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그곳에서 자신의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8월13일)에 대해 “일본의 부전(不戰) 결의를 다지기 위한 것”이라고 변명처럼 말했다.

요약하면 그가 한국과 중국의 반대 경고를 무시하고 현직 총리 자격으로 참배했던 행위를 적당히 얼버무리고, 그로 인해 악화된 한중의 국민감정을 희석시키며 경색된 외교관계를 미봉하려는 의도로 읽혀진다. 그는 방중시 중국의 태평양전쟁 피해에 대해서도 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당시 총리가 담화에서 밝힌 수준대로 “일본의 침략으로 희생된 중국인들에게 사죄와 애도를 표한다”고만 말했다.

그러나 한국 방문도 그런 식이라면 오지 않느니만 못한 역효과가 날 수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방한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의 방한이 극도로 악화된 양국관계를 호전시키는 계기가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고이즈미 총리가 분명하고도 확고한 개전(改悛)의 의지를 보여야 함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야당에서는 고이즈미 총리의 방한 자체를 반대한다고 밝힌 데 이어 그의 15일 여의도 국회 방문조차 거부한다는 당론을 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야의 한일기독의원연맹, 민주당 농어민특위, 한나라당 국제위 소속 의원들도 역사교과서 왜곡, 야스쿠니 신사 참배, 남쿠릴열도 꽁치조업 배제 등 3대 현안에 일본의 ‘성의 있는 태도’가 전제되지 않는 한 방한을 반대한다고 맞서고 있다. 역사학자들과 시민단체의 격렬한 방한 반대성명 발표 및 시위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전례 없는 한국 정치권과 시민사회의 반일(反日) 분위기는 고이즈미 정권이 스스로 부른 것이다. 98년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당시 총리와 김대중 대통령간의 ‘21세기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과 월드컵 축구 공동개최를 계기로 다져진 우호협력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다. 내년의 월드컵 개최를 앞두고 양국간에 늘어나야 할 교역액수, 투자 및 인적교류가 거꾸로 감소세인 것을 일본도 우려해야 한다. 우리 정부도 대일 외교에서 짚을 것, 따질 것을 소홀히 하고 미봉에 급급할 경우 수습할 수 없는 국면이 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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