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임상원/‘조폭’ 제도권 진입 안된다

  • 입력 2001년 10월 7일 18시 39분


나라가 내외로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미국 워싱턴과 뉴욕에 대한 테러는 다른 것은 말고도 북-미관계를 좀 더 어렵게 만들고, 이것은 또 남북관계에 그렇게 좋은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다. 또 안으로는 거의 모든 문제에서 내편 네편으로 나뉘어 싸움이 그칠 줄 모른다. 이런 갈등은 아마도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더 치열해질 것이고 그만큼 사회 혼란은 더해질 것이다.

▼국가 정체성 찾아야 혼란 없어▼

앞으로 나라가 얼마나 더 어려워질는지, 또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사람들이 이것은 아닌데 하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 혼란스러워 좀 분명해졌으면 하는 일도 있고 또 이런 것은 제거되어야 한다고 믿는 악(惡)도 있다. 최근 부쩍 걱정스러워지는 문제 하나씩만 거론한다. 그것은 먼저 나라의 정체성이 혼란스러워지는 문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우리의 공권력을 부패 무력화시키는 사(私)권력, 즉 조직폭력의 확산 문제이다.

각 나라에는 저마다의 정체성이 있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가장 잘 대표하는 말은 ‘자유민주주의’일 것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들어선 이후 정부정책 또는 노선에 대하여 그것이 과연 ‘자유민주주의’에 맞는 것인가 하는 의혹과 비판의 목소리가 적지 않게 나왔다. 물론 오늘날 ‘자유민주주의’란 말이 갖는 의미는 그 폭이 상당히 넓고 다양하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우리 ‘자유민주주의’가 과연 어떤 ‘자유민주주의’였는지 이제는 한 번 되돌아보고 점검해 볼 때가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가 지향하고 있는 국가의 정체성을 더 명료히 할 필요가 있다. 이 문제만 정리된다 해도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혼란과 불확실성은 상당히 제거될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로 조직폭력 및 범죄 문제이다. 사실 이 문제는 어제오늘의 문제는 아니다. 또 우리나라만의 문제도 아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조폭, 즉 마피아가 있다. 마피아의 원 고향은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이다. 19세기 시칠리아의 수도 팔레르모는 한때 마피아의 지배에 있었다. 사회의 유지, 범죄자 그리고 정치인들이 서로 결탁해 마피아의 두목들이 그곳의 대지주, 고위 경찰관, 군 장교 그리고 유력한 정치인 노릇을 했다.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권이 이들을 한때 소탕했는데 역설적이지만 그들은제2차 세계대전 때 미군의 이탈리아 상륙작전에 협력한 뒤 그 대가로 다시 소생했다. 그로부터 이탈리아의 마피아는 제도권으로 깊숙이 파고들어 막강한 세력을 행사하면서 세계 마피아들이 부러워하는 모델이 되었다.

1970년대 말부터 일어난 이탈리아 국민의 마피아 반대 데모 등에 의해 마피아는 제거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반(反)마피아 시민운동가, 검사, 기자 등이 살해됐고 그리고 알도 모로(1916∼1978) 전 총리도 납치됐다가 살해됐다. 2차 대전 이후 일곱 번이나 총리를 역임한 정치인 줄리오 안드레오티는 최근 무죄선고를 받았지만 거의 지난 10년 동안 마피아에 관한 폭로 기사를 쓴 기자가 살해된 사건 및 로마의 마피아를 보호한 혐의로 법정에 서야 했다.

▼국민 안심시킬 국가정책 필요▼

물론 우리의 경우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최근 나타나고 있는 조폭 현상은 숙고되어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분쟁이 발생하거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여러 곳에서는 공권력보다 조폭이라는 사권력이 개입하여 경제적 이득을 취하고 있는 징후가 증가하고 있다. 또 이들이 우리 사회의 공식적인 제도권에 진입하고 있다는 우려도 확산되고 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무엇보다 위험한, 그리고 최우선적으로 막아야 할 사태이다.

우리가 어떤 국가와 사회를 만들고 있는가 하는 정체성 문제가 분명할 때 국민은 안심할 수 있다. 이것이 없이는 국민을 이끌 수 없다. 또 우리 사회는 지금 검찰 등 공권력의 부패와 무능을 여실히 노출시키면서 조폭을 공개적으로 초대하고 이를 예찬하고 있다.

임상원(고려대 교수·언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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