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육정수/‘법과 원칙’의 이중성

  • 입력 2001년 10월 7일 18시 37분


지난 한달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용호 사건’과 ‘검찰 등 비호의혹 사건’, 그리고 ‘김형윤 사건’. 뿌리가 같은 사건들인지, 아니면 각기 다른 사건인지부터 헷갈리게 한다.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상당수 독자들의 반응도 이해할 만하다.

게다가 이용호씨 앞에 형용사처럼 붙는 지앤지(G&G)는 뭔지, 해외 전환사채(CB)는, 펀드는, 보물선 인양사업은, 경마실황 중계권은…. 이씨가 동원한 수법과 손댄 사업이 왜 그렇게 복잡하고 많은지 이젠 짜증이 날 지경이다. 평소 재테크 등에 관심이 별로 없는 독자들은 경제용어를 이해하랴, 사건 내용을 따라가랴 무척 힘들었을 것 같다.

그동안 이용호 김형윤씨를 비롯한 몇몇 사람이 구속됐다. 또 지난해 이씨에 대한 진정사건의 불입건 조치와 관련해 당시 서울지검 지휘부, 이씨에게 불리한 증권가 루머를 수사하도록 일선 경찰서에 압력을 넣은 혐의로 경찰 간부가 아직도 조사받고 있다.

하지만 요즘 수사 관계자들에게서 흘러나오는 말은 “형사처벌할 만한 게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부 징계 정도는 모르지만…”이란 토를 단다. 특히 처음부터 관심을 모았던 정관계 인사 등의 비호의혹에 대한 수사는 물 건너간 느낌마저 든다. 그동안 ‘이용호 리스트’설 등 말도 많았지만 여당의 한 의원에게 정치자금 2000만원을 후원한 사실만이, 그것도 국정감사에서 이씨의 입을 통해 확인됐을 뿐이다.

어느 검찰 관계자는 기자들의 계속된 ‘추궁’에 “안 나오는 것을 검찰이 만들어내란 말이냐”고 대답했다고 한다. 물론 그럴 수는 없다. 하지만 검찰에 묻고 싶다. 지금 정말 최선을 다해 수사하고 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현 정권이나 검찰에 부담을 줄 만한 것이 나와도 끝까지 파헤칠 의지가 있는가.

만약 ‘예스’라고 부끄럽지 않게 대답할 수 있다면 결과가 없어도 좋다. 국민의 의혹은 이 사건 자체에 대해서보다도 수사 주체, 즉 검찰에 대한 원천적인 의혹이 더 강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형윤 전 국정원 경제단장의 경우 이미 지난해 동방금고 불법대출사건 때 청탁의 대가로 5500만원을 받은 혐의가 드러났으나 검찰은 이를 덮었다. 이용호 사건을 계기로 동아일보가 이 사실을 특종 보도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그대로 묻혀버렸을 것이다.

“더 이상 나오는 게 없다”는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곧 수사결과를 발표할 것이라는 성급한 얘기도 나오고 있다. 때를 같이 해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5일 국무총리가 대독한 국회 시정연설에서 이 사건을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중요 사건 때 자주 언급되는 김 대통령의 ‘법과 원칙론’은 듣기에 따라 이중성을 띠고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 언론사 세무조사 사건 때는 ‘대주주 구속’으로 나타났다. 대통령의 이번 언급은 원론적인 얘기라고 주장할 수도 있겠지만 전례로 볼 때 어떤 방향성을 함축하고 있는 게 아닌가 여겨지기도 한다.

언론사 사건 때처럼 ‘거물급의 구속’으로 결말날지, 아니면 ‘법과 원칙에 따라 수사했지만 아무 것도 없더라’로 마무리될지는 두고볼 일이다. 의혹사건을 적당히 덮는 수순(手順)에 들어간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육정수<사회부장>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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