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장미란/자연 닮은 세상을 물려주자

  • 입력 2001년 10월 7일 18시 31분


내가 다니는 교회에는 갓난아기가 교회에 처음 나오는 날 그 아이를 위해 온 교인이 기도하는 예식이 있다. 바로 지난주에도 갓난아기를 위한 기도가 있었다. 먼저 강보(襁褓)에 싸인 아기가 아빠 품에 안겨 엄마와 함께 앞으로 나온다.

목사님이 그 아기를 받아 안고 교인들에게 보여준다. 강보에 싸인 아기 얼굴이 잘 보일 리 없다. 그래도 새 생명을 대하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환한 웃음이 감돈다. 목사님은 기도를 통해 새 생명이 그 가정에 온 것을 감사하고 그 아이로 인하여 가정과 사회가 더 밝아지고 따뜻해지기를 기도한다.

그리고 살아갈 세상이 아무리 험해도 아기가 어둠에 파묻히지 말고 어둠을 뚫고 나와 빛을 만들며 살아가기를 기원한다. 새 생명을 위해 함께 마음을 다해 올리는 그 기도의 순간은 참 아름답다. 지금은 부모 품에 안겨 편안하게 잠들어 있는 새순 같은 생명이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날 삶의 고통을 생각하니 더욱 간절히 기도하게 된다. 이 아이를 부모가 홀로 키우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기도로 키워 갈 것을 다짐하며 기도는 끝난다.

▼돈-권력 위해 경쟁하는 사회▼

기도를 하는 중에 특히 “우리가 함께 이 아이를 키워간다”는 말이 가슴 깊이 와 닿는다. 이 기도가 앞에 나와 있는 한 아기를 위한 기도로만 느껴지지 않고 세상의 모든 아기들을 위한 기도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 순간 아이를 향한 사랑으로 기도하고 있는 모든 사람이 하나됨을 느낀다. 동시에 세상의 모든 새 생명들이 우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느낀다.

우리는 내 자식 하나를 내 손길과 내 능력, 내 눈길로 키우는 줄 알고 자기 아이에게만 온 정성을 쏟는다. 그러나 한 아이를 키우는 것은 그 부모만이 아니다. 아이들은 그가 속한 수많은 공동체 안에서 자란다. 아이와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공동체 구성원들이 새 생명을 ‘함께’ 키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 아이, 내가 잘 키우면 돼” 하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내가 아무리 옳게 키우려 해도 우리가 사는 사회가 왜곡돼 있으면 아이는 제대로 자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가 새 생명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으면서 내 마음 속에는 어떤 착잡함 같은 것이 문득 고개를 든다. 세상에서 제자리를 찾지 못해서 평생을 두고 떠돌이로 살아가는 사람을 많이 보았기에 아이들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저 어린 생명들이 세상의 거친 물결에 휩쓸려 내려가지 않아야 할텐데…. 자신에게 알맞은 자리를 찾아 저마다 빛을 내며 살아야 할텐데…. 어린 싹들이 자랄 환경이 삭막하기만 하다는 생각을 하니 가슴이 답답해 온다. 그들은 이제 “일등만이 살아남고 최고만이 기억된다”는 정보화와 세계화 시대의 비정한 경쟁 속에서 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비정한 경쟁의 궁극적인 목적은 무엇일까? 돈이다. 모두가 경쟁에서 이겨 돈을 움켜쥐어야 행복할 수 있다고 한목소리로 외친다. 돈이 행복의 기초요, 보장이라고 믿으니 자연히 눈에 보이는 것은 돈밖에 없는 세상이다. 결국 돈과 권력을 차지하여 남을 거느리고 지배하는 맛, 으스대는 쾌감을 맛보라고 어른들은 아이들을 일찍부터 그 비정한 경쟁 속으로 내몰고 있는 것이다.

▼자연속에는 수많은 생명이 공존▼

서로 더 많이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다투는 세상에 참 평화는 없다. 그리고 평화가 깨진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돈이 많은 사람이건 적은 사람이건, 교육을 많이 받았건 적게 받았건 행복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이들의 행복을 원하면서도 행복으로부터 자꾸 뒷걸음질치는 파괴적 경쟁의 세상 속으로 아이들을 밀어붙이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나는 새싹 같은 아이들이 자연을 닮은 세상에서 살아가는 미래를 꿈꾸어 본다. 자연 속에서는 수많은 생명이 각자 아름다움을 지닌 채 함께 존재한다. 서두르며 조급증을 부리지 않아도 때가 되면 모든 것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자연은 온갖 생명을 길러내고 나눠줄 뿐 아무 것도 차지하거나 거느리지 않는다. 그런 자연을 조금이라도 닮은 세상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다.

장미란(한국알트루사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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