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제동걸린 공정위의 ‘월권’

  • 입력 2001년 9월 29일 17시 42분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서울고등법원이 공정거래위원회의 과징금 부과에 대해 위헌심판을 제청한 것은 오늘날의 공정위 역할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주는 중요한 사건이다. 물론 기업의 불공정행위는 질타받아 마땅하고 법에 의해 엄정하게 처벌받아야 할 대상이지만 법이 공정위의 월권을 보장함으로써 정상적 기업 활동을 제약해 왔다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니다.

공정위의 본분은 기업에 대한 무차별적 규제가 아니라 공정 경쟁의 여건을 조성함으로써 시장에의 신규 참입을 도와주는 것이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 정부 출범 이후 공정위는 무소불위의 권한으로 기업을 견제하고 처벌하는 기관이라는 인상을 주어왔다. 본말이 전도된 공정위의 이 같은 행태 때문에 그동안 업계는 이 정부가 과연 자본주의, 자유시장경제를 영위할 의지가 있는지를 의심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나온 이번 서울고법의 결정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대목은 ‘행정소송을 통해 적법성 여부가 가려지기 전에 과징금을 강제 징수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부분이다. 다른 정부 관청도 비슷하지만 법적 판단을 받기 이전에 공정위의 공권력과 집행력이 일방적으로 행사됨으로써 해당 기업이 미리 사회적 죄인으로 낙인찍히도록 되어 있는 제도는 잘못이다. 추후 법정에서 무혐의가 입증되더라도 이미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기업이 타격을 받고 명예를 손상당했다면 법원 판결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형사상 벌금형과 실질적 차이가 없는 과징금을 공정위가 행정처분으로 부과하는 것이 사법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법원의 견해도 설득력을 갖는다. 자의적으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기 때문에 공정위가 누구의 견제도 받지 않는 절대 권력을 기업에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과징금을 무기로 압박을 받은 기업들이 정상적 경제 활동을 할 수 없었다면 그것은 국민 경제 전체를 해치는 일이라는 점에서 그 같은 관행은 조속히 시정되어야 한다.

대법원 최종심을 기준으로 할 때 이 정부 들어 공정위의 패소율이 유난히 높아졌다는 사실은 그동안 이 기관이 얼마나 기업을 마구잡이로 처벌하려 들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번 법원의 위헌심판 직권제청이 공정위의 이 같은 ‘기업 들볶기’에 제동이 되기를 기대한다. 정부는 이번 일을 계기로 공정위의 기능과 위상을 재정립해 서비스하는 기관으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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