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고양이를…', 스무살 그녀들 무엇으로 사는가

  • 입력 2001년 9월 27일 18시 37분


고양이와 스무살 여자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고양이를 부탁해’(10월 6일 개봉)는 고교 시절 단짝이었던 스무살짜리 여자 친구들의 삶을 그린 영화다.

인천의 여상을 졸업한 지 1년. 늘 함께였던 다섯명의 친구들은 어느새 다른 인생을 걷고 있다.

부모가 운영하는 맥반석 찜질방에서 카운터를 보는 태희(배두나), 서울 증권회사에 사환으로 취직해 사회생활의 쓴 맛을 알아가는 혜주(이요원), 쓰러져가는 판자집에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힘겹게 사는 고아 지영(옥지영), 거리에서 액세서리를 파는 쌍둥이 화교 자매 비류(이은실)와 온조(이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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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설정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 영화는 ‘주변부 인생’을 다루고 있다. 여성 영화감독인 정재은 감독(32)은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 스무살 여자들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기에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이 영화는 스무살 여성 중에서도 영화의 관심밖에 있었던 여자들을 그린다. 여대생도, 술집 여자도, 자유로운 섹스를 즐기거나 방황하는 N세대도 아닌, 지극히 평범한 스무살 여자들을 이 영화에서 만날 수 있다.

‘고양이를 부탁해’에서 고양이는 다섯 명의 친구를 엮어주는 장치다. 지영은 혜주에게 생일선물로 길에서 주웠던 고양이를 선물하지만, 감당 못한 혜주는 다시 지영에게 돌려준다. 지영은 태희에게 고양이를 ‘부탁’하고, 다시 태희는 고양이를 미류와 은조에게 맡긴다.

정 감독은 “야생동물과 애완동물의 묘한 경계선에 있는 고양이가 이제 막 가정의 테두리를 벗어나 사회로 나오려는 스무살 여자들과 닮았다”고 말한다.

대다수가 좋아하는 애완동물인 강아지와는 달리, 고양이는 우리 사회에서 어떤 편견의 대상이다. 이 점에서도 다섯 명의 주인공들과 고양이는 닮은 존재다.

영화속에서는 혜주의 상사인 팀장은 “야간대학이라도 가야지. 언제까지나 저부가가치 인간으로 살 순 없잖아”라며 여상을 졸업한 사환에 대한 사회 인식의 일각을 드러낸다.

하지만 정작 감독이 ‘고양이’를 통해 말하고 싶은 것은 ‘유연성’이었던 듯 하다. 미얀마 근로자들과 미팅을 하려 하거나, 지체장애인인 시인을 좋아하고, 배를 타는 선원을 꿈꾸는 태희는 그런 점에서 다섯명 중 가장 ‘고양이적’이다.

비전이 안 보이는 ‘주변부 청춘’을 다뤘다고 해서, 압구정동의 분위기 좋은 카페가 아닌 인천의 판자촌이 나온다고 해서 이 영화가 ‘구질구질’하다고 생각한다면 잘못이다. 감독은 스무살 특유의 여리고 발랄한 감성을 놓치지 않고 포착해 냈다.

이 영화의 또다른 장점은 일상에 대한 세밀하고 사실적인 묘사다. 이가 시원치않아 총각김치를 제대로 베어먹지 못하고 쩔쩔매는 할머니를 지영이가 애증이 교차하는 짜증스런 표정으로 쳐다보는 장면이 그 예다.

전체적으로 이 영화는 ‘심심하다’. 하지만 ‘사건의 연속’은 영화속에서나 있는 일일 뿐, 스무살 때 느껴지는 하루 하루는 실제로 그처럼 길고, 심심한 일상의 연속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보면 지붕이 내려앉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하루 아침에 숨진 뒤 지영이 보호소에 가게 되고, 태희가 돈을 훔쳐나와 가출하는 ‘사건’은 돌연 ‘영화적’으로 보인다.

<강수진기자>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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