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눈이 안보이면 혀로 본다?

  • 입력 2001년 9월 24일 18시 52분


혀에 전기자극을 줘 영상을 인식한다
혀에 전기자극을 줘 영상을 인식한다
이가 없으면 잇몸이라는 말이 있다. 과학자들은 최근 이 말을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기술개발에 적용하고 있다.

촉감이나 소리로 볼 수 있게 하는 방법과 망막이나 대뇌시각피질에 컴퓨터 칩을 이식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 방법은 지팡이나 맹도견에 의지하던 시각장애인들에게 흐릿하나마 사물의 형태와 움직임을 인식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있다.

▽촉감과 소리로 본다〓최근 캐나다의 한 방송에는 태어날 때부터 시각을 잃은 39세의 여성이 출연했다. 이 여성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촛불의 모양과 움직임을 알게 됐다. 그녀의 눈을 대신한 것은 바로 혀.

미국 위스콘신대학 바흐-이-리타 교수 연구팀은 카메라를 통해 들어온 영상신호를 전기신호로 변환시켰다. 이 전기신호를 전극으로 혀에 전달한 것이다. 그 결과 대뇌는 흐릿하나마 사물의 형태와 움직임을 인식할 수 있었다.

어릴 때 시력을 잃은 사람의 대뇌시각피질은 점자를 읽거나 촉감을 느낄 때 활성화된다. 과학자들은 영상신호를 시각장애인들이 민감한 감각신호로 바꿔 대뇌시각피질을 자극하려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한림대 신형철 교수팀이 같은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신교수는 전기신호를 실험자의 등과 옆구리에 전달했다. 이때 영상신호는 TV화면처럼 작은 픽셀 단위로 나눴으며 명암에 따라 전기자극의 세기를 달리했다. 실험 결과 각 픽셀의 전기신호를 통합해 하나의 영상을 인식할 수 있었다.

소리도 눈을 대신할 수 있다. 한국과학기술원 김병국 교수(전자전산학과)팀은 카메라 대신 초음파를 이용한 시각대체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박쥐는 장애물에 부딪혀 돌아오는 초음파를 인식한다. 김 교수는 안경이나 지팡이에 초음파 센서를 붙여 사물의 위치를 파악한 다음 이 정보를 소리로 전달하는 장비를 개발하고 있다.

네덜란드 필립스연구소의 피터 메이저 박사팀은 영상신호를 소리로 바꾸는 카메라와 스피커 일체형 헬멧을 개발했다. 사물의 형태와 명암은 소리의 진동수와 진폭을 조합해 전달한다.

▽컴퓨터 칩으로 본다〓망막이 손상된 시각장애인에게 컴퓨터 칩을 이식하는 방법도 있다. 빛을 받아들이는 세포만 손상된 경우에는 태양전지와 전극만으로 구성된 칩을 이식한다. 카메라가 보내는 빛은 태양전지에서 전기로 바뀐다. 이 전기로 전극을 움직여 신경세포를 자극하는 것. 미국 옵토바이오닉사는 7월말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청(FDA)의 승인 아래 지름 2㎜의 칩을 환자에게 이식한 바 있다.

서울대 공대 김성준 교수(전기공학부)와 의대 정흠 교수(안과학교실) 공동 연구팀은 망막 위에 삽입하는 칩을 개발해 토끼를 대상으로 실험하고 있다. 현재 망막세포가 전극 표면에서 문제없이 증식하는 것을 확인해 전망을 밝게 해주고 있다. 연구팀은 2010년대 실용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한편 눈을 거치지 않고 바로 대뇌 시각피질을 자극하는 장치도 있다. 미국 도벨연구소가 개발한 장치는 안경에 달린 CCD카메라로 찍은 영상신호를 전기신호로 변형한 다음, 대뇌 피질에 삽입한 전극으로 바로 전달한다.

<이영완동아사이언스기자>puse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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