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수사 의지가 관건이다

  • 입력 2001년 9월 23일 18시 54분


연일 새로운 의혹이 불거져 나오는 이용호(李容湖)씨 로비의혹 사건이 이번엔 비망록의 존재 여부를 놓고 한나라당과 검찰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어 더욱 혼란스럽다. 한나라당 이재오(李在五) 원내총무는 “검찰 수사가 미흡하면 당 차원에서 입수한 내용을 공개할 용의가 있다”고 폭로했고 검찰은 비망록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고 있으니 국민은 헷갈릴 뿐이다.

이씨로부터 돈을 받은 권력기관 인사들의 명단을 적었다는 비망록이 존재한다면 이용호 게이트의 전모를 밝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될 수 있다. 한나라당이 비망록이 존재한다고 확신을 갖기에 충분한 제보 내용이나 자료가 있다면 국민적 의혹을 풀 수 있도록 언론과 검찰에 제시해야 한다. 근거가 확실치 않은 제보나 뜬소문을 집대성해 부풀리기 공세를 편다는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도 그렇다.

검찰은 작년 수사 당시 압수한 서류나 이번에 새로 확보된 서류 목록을 공개해서라도 비망록의 존재 여부를 확인해줌으로써 수사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검찰이 비망록의 존재를 부인해도 믿음을 사지 못하는 것은 작년에 사과상자 분량의 관련 서류를 압수해놓고서 갑자기 수사를 중단해버린 원초적 잘못 때문이다.

특별감찰본부 주변에서는 이씨에 대한 수사중단과 석방이 당시 수사진의 경험부족과 판단잘못에서 비롯됐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오는 모양이다. 당시 특별수사 경험이 없는 사람을 수사진에 포함시킨 인사도 잘못됐지만 이것이 이용호 게이트의 모든 의혹을 풀어주는 실체일 수는 없다.

검찰 수사의 관행에 비추어 체포장을 발부받고 압수수색을 한 것은 구속을 전제로 한 수사의 시작이다. 그런데도 수사도 제대로 하지 않고 하루 만에 풀어준 것은 상식에 비추어 수사 실무진의 단독 판단 잘못이라고 보기 어렵다.

김태정(金泰政) 전 법무장관이 사건을 수임하고 전화변론을 편 내용을 시인했고 신승남(愼承男) 검찰총장의 동생이 관련업체에 취업해 거액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단순히 절차상의 오류나 판단 잘못이 아니라 내압(內壓) 또는 외압(外壓)이 있었음을 보여주는 단서이다.

벌써 두 야당은 특별검사제에 합의해 놓고 있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특별감찰본부까지 차려놓고서도 이 사건의 수사가 용두사미식으로 흘러가서는 견디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드러난 것만으로도 썩은 냄새가 풀풀 나는 사건이어서 비망록의 존재 여부와 관계없이 검찰이 수사의지만 확고하다면 못 밝혀낼 것이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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