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삶이 詩인 외곬인생들 '한길을 가야 인생이 보인다'

  • 입력 2001년 9월 21일 18시 33분


한길을 가야 인생이 보인다/김유경 외 지음/288쪽 7500원 눈빛

비릿한 철부지 사랑얘기가 지천에 깔린 고만고만한 책들 속에 이 책의 출간은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거기에는 대책없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대책이 없어서 속 터지지만 그렇게 대책없는 인간들만 볼 수 있는 또 다른 세상이 오롯이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이 다 유명하고 짜하게 소문난 사람들도 아니고, 남보란듯이 무얼 이룬 사람들도 아니지만, 무엇을 못 이루었으면 또 어떠랴. 그저 그 사람들의 하는 짓이나 그 태만 보아도 정겹고 뭉클하다.

초등학교 졸업‘쯩’도 없이 죽자사자 한문만 공부해서 ‘쯩 중독증’에 걸린 우리들에게 ‘세상의 문리란 이런 것이네’ 보여주는 성백효 선생의 살림살이가 그렇고, 아침 저녁 취미 삼아 특기 삼아 법학이면 법학 역사면 역사, 무언가를 징그러울 정도로 끊임없이 탐구하며 사신 최태영 선생의 얘기가 그렇다.

그런데 또 이우형이란 사람은 어떤가? 그 양반은 왜 무슨 인연으로 돈도 안 되고 뭣도 안 되는 김정호 선생의 ‘대동여지도’에 홀려서 그렇게 산으로 산으로 떠돌았는가? 그런 사람들은 그런 사람만 느낄 수 있는 감격이 따로 있을 터인데,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또 하나의 의문은 현대 지형도에서도 잘 나타나지 않는 능선 줄기가 ‘대동여지도’에는 명확하고도 큰 선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한남정맥 끝부분의 김포 평야 일대가 특히 그랬다.”

그는 직접 답사에 나섰다. 언뜻 보기에 거의 수평면인 김포평야였지만, 그 평야를 동서로 나누는 이른바 유역능선이 분명이 드러나 있었다. 그는 이 유역능선을 확인하는 순간이 고지도 연구 기간 중 가장 감격적이었다고 한다.

그럴 것이다. 우리가 하찮다고 생각하는 것에서 감격을 이끌어 낼 수 있는 통쾌함이 바로 대책없는 인간들의 힘이고 생명이다. 이 책에는 그렇게 예기치 않게 엉뚱한 곳에서 감동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 득실득실하게 많다. 자기 식대로 살면서 사는 방식 자체가 엉뚱한 감격을 주는 사람들의 삶은 아름답고 귀할 수 밖 에 없다.

나는 명색이 시인이지만 삶 자체가 시인일 수 밖에 없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실린 인물들의 삶이 그런 부류에 속하지 않을까 하는 부러움이 든다. 팔만대장경을 전산화 하는 스님들의 이야기가, 자생식물을 공부하는 ‘농부’의 이야기가 그렇다.

그 뿐인가? 신기 있는 서방을 내림굿까지 해주며 평생 삼베를 짜셨다는 오재분 할머니의 간절한 삶이 가슴을 치고, 치밭목 산장지기 민병태 선생의 외로운 침묵 앞에서는 내가 주저불 주저불 떠들며 살아온 삶이 거짓처럼 보인다.

치밭목산장 안에 걸려 있는 제석봉 상고대 사진에 이런 글이 있단다. “산은 오지도 가지도 않는다… 산은 기다리지도 가지도 않는다.” 암만, 그게 어디 산 뿐이랴. 우리의 명줄은 안 그럴까? “우리 목숨은 오지도 가지도 않는다. … 우리 목숨은 기다리지도 가지도 않는다”윤중호(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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