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구멍뚫린 공항 보안

  • 입력 2001년 9월 14일 18시 33분


보잉747기의 최대 이륙 중량은 388t이다. 이 중 탑재 항공유가 3분의 1 이상인 158t을 차지한다. 158t을 드럼에 옮겨 담으면 1040개 분량이다. 이렇게 엄청난 기름을 싣고 비행기가 뜰 수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드럼 1040개 분량의 항공유가 한꺼번에 폭발하는 것을 한번 상상해 보라. 이번 뉴욕 세계무역센터 빌딩 테러를 통해 항공유를 잔뜩 실은 비행기가 미사일 같은 살상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주목을 받았다.

▷항공기의 보안검색은 항공기에 탑승한 승객의 안전 측면에서 주로 고려됐지만 이제 위험한 ‘미사일’ 관리라는 목적이 추가됐다. 미국 연방항공청(FAA)에 따르면 국제선 검색대에서 칼과 총을 연간 2000개나 찾아낸다. 테러리스트들은 미국 국내선의 보안검색이 국제선처럼 엄격하지 않은 빈틈을 이용했다. 국내선의 보안검색을 강화하면 탑승수속 시간이 길어져 손님이 줄기 때문에 항공사와 FAA가 늘 줄다리기를 벌였다.

▷3개의 공항에서 4대의 비행기가 칼을 든 테러리스트들에 의해 동시에 납치된 사건은 미국 항공 보안의 취약점을 여지없이 노출시켰다. FAA는 사고가 나자 뒤늦게 스위스 군용 나이프와 면도날도 소지할 수 없도록 규정을 고쳤다. 기내식을 제공할 때도 나이프는 주지 않기로 했다. 작은 나이프도 테러리스트의 손에 들어가면 비행기를 강점할 수 있는 무기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이 이번 테러를 통해 증명이 됐다. 그러니 보안검색대 앞에 늘어선 줄이 아무리 길더라도 참을 수밖에 없게 됐다.

▷미국은 자국을 드나드는 다른 국가의 항공안전체계를 점검해 2등급 국가에는 불이익을 준다. 한국에 2등급 판정을 내려 건설교통부와 항공업계가 발칵 뒤집힌 것이 엊그제다. 한국을 혼내준 미국의 항공안전등급도 높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지만 남의 일처럼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도 공항과 항공기의 보안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이런 판에 인천공항에서는 베트남인이 밀입국하기 위해 환승장을 빠져나와 7시간 동안 공항을 헤집고 다니다 붙잡힌 사건이 발생했다. 테러리스트가 아니어서 천만다행이다.

<황호택논설위원>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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