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민웅/부러운 미국의 국론통일

  • 입력 2001년 9월 13일 18시 39분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 미국의 경제력과 군사력을 상징하는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워싱턴의 국방부에 대한 미증유의 테러 공격은 시간이 흐를수록 미국인들에게 경악과 분노를 넘어 무서운 보복의 결의를 다지게 하고 있는 것 같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을 통해 “미국은 사악한 행위의 배후자들과 이들을 보호하는 어떠한 국가에 대해서도 보복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부시 대통령의 연설 직후에 실시한 워싱턴포스트와 ABC방송의 공동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조사 대상자의 압도적 다수인 94%가 이번 테러에 책임이 있는 집단이나 국가에 대한 군사적 행동을 지지한다고 응답했고, 이 가운데 92%는 군사적 공격이 전쟁으로 이어져도 지지한다고 응답했다. 놀라운 국론 통일이다. 일본의 진주만 공격 이후 없었던 일이다.

▼테러발생후 지도자중심 결속▼

일반 국민의 여론만 그런 것이 아니다. 미국 유력지의 사설과 칼럼도 단호한 보복 조치를 촉구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2001년 9월11일’이라는 제목의 12일자 사설에서 60년 전 진주만이 공격을 받았던 1941년 12월7일처럼 이날도 ‘치욕의 날’로 기억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당시 선조들이 보여주었던 ‘강철 같은 의지’로 테러를 계획하고 수행한 살인자들과 이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하고 또 위무 격려한 국가들에 대한 단호한 보복 조치가 있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워싱턴포스트에 기고한 어떤 외부 칼럼니스트는 의회에 대해 즉각적인 ‘전쟁 선포’를 촉구했고, 또 다른 칼럼니스트는 심지어 ‘미국의 성전(聖戰)’을 외치기도 했다. 무슨 일을 저지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다만 뉴욕타임스는 보다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다. 좀더 지켜보자.

마침 이 글을 쓰고 있는 도중에 한 후배 교수의 e메일을 받았는데, 편지에는 노스트라다무스의 3차 대전 예언이 영문으로 인용돼 있었다. 노스트라다무스가 예언한 ‘두 형제가 대혼란 속에서 갈기갈기 찢어진다’는 대목은 붕괴된 세계무역센터 쌍둥이 빌딩을 상징하며, ‘대도시가 불타오를 때 3차 대전은 시작된다’는 시점인 1999년은 지금의 달력으로는 2001년에 해당한다는 주석이 이어졌다. 이런 예언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겠지만 어수선한 기분이 드는 것만은 숨길 수 없다. 어쨌든 미국의 국론 통일을 보면 외부의 적은 내부의 결속을 강화하는 순기능을 한다는 명제를 다시 한번 실감케 한다.

사실 진주만 피습 이후 미국의 자존심을 구기게 만든 사건은 이번 테러말고도 또 있었다. 베트남전이 그랬다. 베트남전은 미국이 역사상 처음으로 패퇴한 전쟁이었다. 당시 미국과 ‘월맹’의 유무형의 권력 자원은 비교가 안될 정도였다. 예컨대 국토의 크기, 인구, 경제력, 군사력, 보유 무기의 양과 질 같은 유형의 권력자원은 물론이고, 과학 지식과 기술의 수준, 현대적 조직관리 능력 같은 무형의 권력자원도 미국이 압도적 우위에 있었다. 그런데도 미국은 패퇴했다. 미국인의 처지에서 보면 기가 막힐 일이다.

왜 그랬을까? 많은 학자들은 미국의 패퇴 원인에 대해 베트남전 참전에 대한 미국 내의 국론 분열을 으뜸가는 원인으로 꼽는다. 국론이 분열돼 그들이 갖고 있던 권력 자원을 효과적으로 ‘실제적 권력(active power)’으로 전환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미국인들은 다시 뭉치고 있다. 부시 행정부의 대처 능력에 대한 믿음도 높다. 테러 단체를 색출하여 보복을 가하는 부시 행정부의 능력을 신뢰한다는 응답이 무려 91%로 나타났다.

▼편가르기 일삼는 우린 어떤가▼

어떻든 국가적 위기를 맞아 미국인의 국론 통일과 지도자에 대한 신뢰를 보면서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눈길을 국내로 돌리면 그저 답답하기만 하다. 국정 난맥상을 극복할 인사 쇄신의 마지막이자 절호의 기회라는 국민의 열망을 외면한 최근의 정부 여당 청와대에 대한 괴이한 인사가 머리에 떠오르고, 당면한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국민의 힘을 모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반통일이니 반개혁이니 하면서 끝없이 편가르기를 하고 국론을 분열시키는 데 앞장서는 일부 집권세력과 이에 부화뇌동하는 언저리 세력의 무모함을 생각하면 저절로 절망감에 빠진다.

이민웅(한양대 교수·언론학·본보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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