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공계 대학 '영어 강의' 확산

  • 입력 2001년 9월 10일 18시 41분


2일 오후 2시 광주과학기술원 신소재공학동 205호 강의실에서는 신소재공학과 성태연 교수의 ‘결정구조 및 결함’ 강의. “Isn’t it?” “Yes. But What does that bar mean?” “Good point.” 처음 이곳에 온 사람들을 외국 대학 강의실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뜨리는 장면이다.

연구 중심 이공계대학원으로 출범한 광주과기원은 개원 이듬해인 96년부터 모든 강좌를 영어로 진행하고 있다. 심지어 학생들에게 발송하는 공문까지 영어 사용이 필수다. 이를 위해 학생들은 무조건 영어 두 과목을 수강해야 하고, 토플(TOEFL) 550점을 획득해야 한다.

상당한 부담일텐데 설문조사에서 75%의 학생들이 영어강의에 동의하고 있다. 박사과정의 손정인씨는 “영어강의를 듣다보면 외국 학자들과 대화하는데 부담이 없어진다”고 말했다. 이공계 대학원에서는 외국 학자들이 참가하는 세미나나 학회가 잦다. 웬만한 대학원생들은 가능하면 이 자리를 피하거나 참석하더라도 조용히 듣기만 하지만 영어강의를 수강한 대학원생들은 자연스럽게 외국 학자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것.

그 결과 이제는 대학원생들이 국제 학회에 나가 교수 대신 영어로 연구논문을 발표하는 일도 많아졌다고 한다. 백운출 정보통신공학과 석좌교수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세계 광섬유학회에서 최신 연구논문을 발표할 사람도 석사과정 학생”이라고 대학원의 달라진 모습을 말했다.

학생들의 이러한 변화는 ‘논문의 국제화’로 나타났다.

광주과기원의 경우 올해 2월과 8월 모두 20명의 박사를 처음으로 배출했는데 박사학위를 받기까지 평균 5.6편의 논문을 미국과학논문인용색인(SCI)에 등재된 학술지에 게재하는 성과를 보였다. 석사 때부터 모든 연구결과를 영어로 작성하도록 한 결과 언제든 좋은 성과가 있을 때마다 바로 국제 학술지에 제출할 수 있었다는 것.

광주과기원의 성공 사례는 국내 대표적 이공계 대학으로 확대되고 있다. 포항공대는 2003년까지 모든 대학원 강의를 영어로 진행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학부도 현재 8% 수준인 영어 강의 비율을 20∼30%로 늘릴 예정이다. 강좌의 14% 정도를 영어로 진행해 온 한국과학기술원(KAIST)은 2005년까지 모든 전공 과목을 영어로 진행한다는 계획을 밝혔다. 서울대는 지난해 신규교수 채용 기준에 영어강의 능력을 포함시켰다.

국내 대표적인 이공계 대학들의 영어강의 바람은 결국 대학의 세계화로 이어질 전망이다. 광주과기원은 최근 교수 모집 공고에 ‘국적불문’이란 말을 명시했다. 현재 학생과 교수의 15%까지 외국인을 허용하는 규정도 그 범위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개정 중이다.

포항공대는 최근 대학원 정원의 20%, 학부정원의 15%를 외국인 학생으로 채운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KAIST는 2005년까지 학생 구성을 내국인 6500명 외국인 1000명, 교수는 내국인 500명 외국인 80명으로 하며 2010년까지는 교수와 학생의 30%를 외국인으로 구성한다는 계획이다. 서울대도 전체 1600여명의 교수 중 외국인 교수를 100여명까지 늘린다는 계획 아래 5월에는 사상 처음으로 외국인 교수를 임용한 바 있다.

바야흐로 국내 이공계 대학의 세계화 경쟁이 시작된 것이다.

<이영완동아사이언스기자>puse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