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조명현/하이닉스 실태 재점검하라

  • 입력 2001년 9월 10일 18시 22분


한국 경제의 불안 요인이 되어온 하이닉스반도체의 처리가 주요 채권은행들의 출자전환과 신규자금 지원을 포함한 적극 지원 쪽으로 방향을 잡아가고 있다. 채권단 지원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투신사들도 일단 지원에 동참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다. 따라서 하이닉스는 당분간 유동성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하지만 하이닉스에 대한 처리 과정을 지켜보면서 걱정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부 언론은 경제논리보다는 하이닉스와 미국의 반도체 생산업체 마이크론간의 사활을 건 싸움에서 하이닉스를 죽게 해서는 안된다는 식의 감정적인 논조를 고수해 왔다. 뿐만 아니라 채권단의 태도도 살로먼스미스바니(SSB)증권의 보고서 하나에 너무나 쉽게 적극 지원 쪽으로 바뀌었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주요 채권은행들이 하이닉스의 실상과 회생 가능성에 대해 정확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국민정서에 편승한 ‘여론’의 부담 때문에, 또 이해 관계자인 SSB의 보고서에 전적으로 의존해 실제로는 회생이 불가능할지도 모를 하이닉스를 지원한다면 이는 더 큰 부실을 잉태시켜 국가경제를 멍들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SSB 보고서가 객관성과 신뢰성을 갖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된다. SSB는 올해 6월 12억달러에 이르는 하이닉스의 해외 주식예탁증서(DR) 발행을 총괄한 주간사였다. 주간사였기 때문에 실상을 가장 잘 알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역으로 주간사였다는 사실 때문에 하이닉스의 장래가 DR 발행 당시보다 훨씬 불투명해졌더라도 자신들의 견해를 쉽게 바꿀 수 없을 것이다. DR 발행 때 해외 투자자들에게 하이닉스의 장래에 대한 장밋빛 전망을 제시한 지 불과 2개월이 지난 현 시점에서 부정적 의견을 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채권은행들도 하이닉스를 일단 살려놓을 유인이 충분히 있어 보인다. 하이닉스가 부도날 경우 대략 8000억원씩의 대출을 갖고 있는 한빛 외환 조흥은행 등은 현재 15% 정도씩 쌓아놓은 충당금을 당장 50% 이상으로 높여야 하기 때문에 유동성 지원을 통해 충당금을 충분히 쌓을 시간 벌기를 택할 인센티브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객관적 수치를 기준으로 살펴볼 때 하이닉스의 회생은 쉽지 않아 보인다. 반도체 생산업체는 매년 약 2조원의 투자가 필요하지만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린 하이닉스는 최근 2년간 신규투자를 할 수 없었고 그 결과 연구개발력과 제품경쟁력에 심각한 손상이 초래됐다고 평가된다.

뿐만 아니라 반도체 가격이 괜찮았던 지난해 하이닉스는 매출 8조9000억원, 부채 11조6000억원, 그리고 손실 2조3000억원을 기록했다. 매출보다 부채 규모가 크고 호황에도 수조원의 손실을 기록한 기업이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황에서 채권단의 지원만으로 회생하기란 극히 어렵다고 보인다. 기아자동차 한보철강 등의 사례가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지금이라도 객관적이고 신빙성 있는 제3의 기관에 의뢰해 하이닉스에 대한 정확한 실태를 신속히 파악해야 한다. 즉, 세계 반도체 경기에 대한 몇 가지 시나리오에서 하이닉스가 과연 부채 탕감과 신규자금 지원을 통해 세계 반도체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가라는 핵심적인 질문에 대한 객관적인 대답을 얻어야 한다.

만약 객관적 평가 결과가 회생 가능으로 나온다면 채권단은 하이닉스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현재 고려하고 있는 방안보다 더 강력한 지원을 강구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만약 평가 결과가 회생이 힘들다는 쪽으로 나온다면 하이닉스에 대한 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것이다.

이 경우 하이닉스는 일단 법정관리로 가야 할 것이고, 생산 설비를 건지고 대량실업도 막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파운드리(위탁생산전문업체)로의 전환이 불가피할 것이다. 법정관리를 통해 시간을 벌면서 3∼5개월의 정확한 실사 후 일부 라인 폐쇄 및 파운드리로의 전환결정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채권단은 급한 상황 속에서도 객관적 평가에 기초한 하이닉스 처리 방안만이 더 큰 부실을 막고 국가경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조명현(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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