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내분만 자초하고 있다면

  • 입력 2001년 9월 9일 18시 42분


대통령비서실장에 이상주(李相周) 한국정신문화연구원장이 내정됨으로써 여권 개편은 일단 마무리됐지만 그 파문과 후유증이 만만치 않은 분위기다. 이 같은 분위기가 집권 후반기 국정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본란은 이한동(李漢東) 총리가 유임된 것이나 한광옥(韓光玉) 대통령비서실장이 민주당 대표로 내정된 것, 그리고 5개 부처 장관 교체 내용이 기대했던 국정쇄신이나 개혁과는 거리가 먼 인사임을 이미 지적한 바 있다. 이번 개편은 전반적으로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친정 체제를 강화하는 데만 목적을 두었을 뿐 민심은 철저하게 외면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민심을 모르는 인사’라는 불만이 노골적으로 나오고 있다. 소장파 의원들이 “우리는 더 이상 대통령 대리인인 당 대표를 원하지 않는다”는 결의문을 채택한 것이나 최고위원들 중에서도 대통령의 결정에 동의할 수 없다는 반발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번 인사로 인한 후유증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더구나 인사대상자들의 자진사퇴와 동교동계를 겨냥해 특정계보 해체주장까지 나오는 마당이니 당의 내분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조짐이다. 집권당의 그런 모습을 국민은 지금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사실 민주당내 일부 최고위원이나 소장파 의원들의 이번 인사에 대한 ‘저항’은 당연한 것으로 여겨진다. 집권당에 등을 돌리고 있는 민심을 제대로 추스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적 쇄신이 요구되고 있는 데도 오로지 집권 후반기의 정권 장악력에만 역점을 둔 인사를 했으니 내부적으로는 속이 탈 만도 할 것이다.

민주당은 당 총재가 당 대표를 지명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김 대통령이 한 비서실장을 대표로 지명한 것에는 절차상 잘못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당원들의 전체 의사가 집약되지 않은, 나아가 그렇게 하려고 노력조차 하지 않은 인사를 한 데 있는 것 같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봐도 한 정당의 대표가 당원들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이른바 낙하산식으로 결정된다면 민주정당이라고 할 수 없다. 그처럼 자율성을 상실한 정당이 어떻게 여론을 수렴하고 정책을 입안하는 민주정당의 고유기능을 수행할 수 있겠는가.

국회는 다시 여소야대가 됐다. 그러나 갈 길이 험난하다고 해서 당을 일방적으로 끌고 가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면 큰 잘못이다. 당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 그 생명력을 키우는 게 문제 해결의 관건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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