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초저금리 명암…전세난 아우성 카드사 싱글벙글

  • 입력 2001년 9월 5일 19시 01분


1년여의 미국연수를 마치고 최근 귀국한 P씨(39)는 그새 엄청나게 올라버린 아파트 임대료에 입이 딱 벌어졌다. 전세는 간 곳 없이 월세만 나와있었고 집주인은 연율 12%대의 월세를 요구했다. “은행 수신금리가 연 4%대”라고 항변했지만 “그렇다면 전세아파트를 찾아보라”는 면박만 들었다.

‘임대시장의 월세화’는 그가 한국을 떠나 있었던 기간에 벌어진 초저금리가 빚은 변화였다. 워낙 금리가 낮다보니 집주인들이 전세로는 임대를 내놓지 않게 된 것.

전형적인 고금리 경제였던 우리경제가 실질금리 마이너스대의 초저금리 시대에 들어선 것은 금년 4월. 초저금리 상황은 우리 사회 및 경제에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저금리는 그동안 마치 ‘선진경제의 지표’로 여겨지기도 했지만 부정적인 측면도 없지 않다.

저금리가 몰고 온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노인계층의 이자소득 감소. 98년 10월 기준금리(국고채 3년물)가 한 자릿수에 들어선 이후 최근 4%대까지 급락한 만큼 이자생활자들은 소득이 절반 이하로 줄어들었다. ‘초저금리의 충격’이라는 보고서를 낸 삼성경제연구소 박원석 수석연구원은 “장노년층은 저금리에 대비, 노후준비도 앞당길 것”이라며 “노년층의 소득이 줄면 상속시기도 늦출 수 있고 그 규모도 줄어들 수 있다”고 진단했다.

노년층의 금리소득이 줄면서 은행이나 보험사로부터 돈을 빌려쓰고 사망한 후 부동산으로 원리금을 상환하는 ‘역(逆)모기지’상품이 유행할 가능성도 크다. 실제로 삼성생명이 최근 ‘라이트아파트대출-연금형’이란 역모기지상품을 시험적으로 판매, 고객 반응을 살피고 있다.

저금리는 국민복지의 축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각종 연기금과 재단들이 거덜나기 때문이다. 2001년 5월 현재 국민연금기금은 총 66조원의 자금 중 63조원을 이자수입이 나는 곳에 굴리고 있어 수입격감이 뻔하다. 재벌들이 출자한 각종 학원재단 복지재단 문화기금 등도 운영난에 허덕이며 사업규모를 줄이고 있다.

초저금리가 계속되면 자금이 높은 금리를 좇아 해외로 유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외국인 채권투자는 금리가 높았던 96년, 97년을 지나면서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다. 일본의 경우 저금리 때문에 80년 이후 자본이 꾸준히 유출되고 있다.

재테크 측면에서는 고위험 고수익상품의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저금리 기조가 본격화된 7월 이후 투신사의 수익증권으로 자금유입이 본격화되고 있다. 2금융권으로도 돈이 모인다. 은행금리로는 도저히 생활이 안 되는 사람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금융기관 중 갑작스러운 저금리기조로 가장 큰 타격을 입는 쪽은 보험사들. 보험료 수입을 굴려 벌어들이는 이익은 줄어든 반면 고객들에게 내줘야 하는 보험금은 거의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올 4∼6월동안 국내 23개 생보사들이 보험손익부분에서 낸 손실은 모두 2893억원이다. 반면 ‘현대판 고리대금업자’인 카드사, 할부금융사는 수천억원대의 순익을 남겨 희희낙락하고 있다. 싼 금리로 조달해 고금리로 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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