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근 기자의 여의도 이야기]"우린 40대 정년인데…"

  • 입력 2001년 9월 3일 19시 23분


언제부터 언제까지를 가을로 규정짓는가는 구분 기준에 따라 다르다.

천문학적으로는 추분부터 동지까지를, 24절기에선 입추부터 입동 전까지를 가을이라고 구분한다. 기상학에서는 보통 9∼11월을 가을이라고 한다.

가을이다. 아직 한낮의 햇볕은 따갑지만 아침 저녁으로 부는 바람에선 가을이 느껴진다.

가을은 이중적인 계절이다. 결실(結實)의 시기엔 동시에 쇠락(衰落)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4계절에 비유한다면 40대 이후 중년층이 가을에 해당할 것이다. 자연의 이치대로라면 결실과 쇠락을 공평하게 누려야겠지만 결실의 기쁨을 누리는 기간은 짧아지고 쇠락의 시간이 점점 앞당겨지는 추세다. 다름 아니라 퇴직 연령이 점차 낮아지고 있다는 말이다.

증권업 종사자들은 원래 다른 업종에 비해 퇴직이 빨랐던데다 최근의 추세까지 더해지면서 조기퇴직 경향이 더욱 짙어졌다. 증권맨들 사이에 “증권사 정년퇴직은 45세”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최근 만난 한 증권사 직원에게 조기퇴직 경향에 대해 물었더니 그는 “우리 회사에서 창사 이래 정년퇴직을 한 사람은 단 두 명”이라는 대답으로 대신했다. 그리고선 그는 “그 두 사람은 모두 운전기사”라고 덧붙였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업종의 특성상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판단력과 감(感)이 무엇보다 중요한 업종인데 40대에 접어들면 대세를 읽는 감에서나 판단력에서나 젊은 세대를 당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최근들어 조로(早老) 현상이 더욱 심해지긴 했지만 증권맨들은 애초부터 ‘이 바닥’에 오래 있겠다는 희망은 않는다고 그는 덧붙여 설명했다. 젊은 나이에 한몫을 챙겨 떠나면 더할 나위없고, 실패를 해서 떠밀려나도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게 일반적인 생각이라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증권맨들이기에 같은 여의도의 길건너 동네 사람들은 더더욱 한심하게 보인다. 바로 정치인들이다. 한 증권사 임원은 “이쪽(증권업계)에서는 능력이 떨어진다고 판단되면 스스로 떠나기도 하는데 저쪽(정치권) 사람들은 이제 그만 떠나라고 아우성을 쳐도 무슨 미련이 남았는지 꿈쩍도 않는다”고 꼬집었다. 증권사의 정년 연령을 다 채우고도 20년 이상 더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정치인들도 있는 현실을 보면 이런 비판이 나올만도 하다.

가을이 오면 자주 인용되는 시를 그들도 한번쯤은 들어봤을텐데….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이형기, ‘낙화’)

<금동근기자>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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